[최현길의 남아공리포트 ①] 홍수환과 허정무

  • 스포츠동아
  • 입력 2010년 1월 5일 15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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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구 최대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국 스포츠의 첫 인연은 아마도 1974년이 아닌가 싶다.

당시 24세의 프로복서 홍수환이 한국 복싱 최초로 더반에서 벌어진 원정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누르고 챔피언 타이틀을 따낸 곳이 바로 남아공이다.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래 대한국민 만세다”라는 모자간의 생생한 대화는 온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아공의 지리적 위치는 짐작조차 하기 힘든 미지의 땅이었다. 그저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해 있고, 인종차별이 심하다는 정도가 전부였다. 홍수환은 WBA 밴텀급 타이틀매치를 위해 무려 6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야했고, 35시간 이상이 걸려 격전지에 도착했다.

미지의 땅에 응원단이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체육관에는 ‘홍수환’을 연호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 응원단은 바로 원양어선 선원들이었다. 애국가 테이프가 없어 국가 연주가 생략된 가운데 선원들이 애국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면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얘기는 ‘전설’처럼 전해온다. 대한민국 복싱의 신화는 그렇게 창조됐다.

36년이 지난 올해, 이번에는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가 남아공에서 신화 창조에 나선다. 비록 유럽파 등 주전 멤버 대부분이 빠지긴 했지만, 국내파 및 일본파로 이뤄진 25명의 태극전사들은 하나같이 홍수환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을 가슴에 아로 새긴 채 5일 남아공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들은 10여 일 간의 짧은 훈련기간이지만 3차례 연습경기를 갖고, 6월에 치러질 월드컵에 앞서 현지 적응 시간을 갖는다.

아울러 고지대에 대한 심리적, 체력적인 적응도 이번 전훈의 목적이다.

특히 바늘구멍 같은 허정무호 승선을 위해 이들이 벌일 선의의 경쟁은 이 곳 여름 날씨만큼이나 뜨거울 전망이다.

국내 지도자의 자존심을 건 허정무 감독도 비장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아공 및 스페인 전지훈련을 통해 월드컵 구상을 하나하나 맞춰나갈 예정이다.

이처럼 이번 훈련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남아공과 한국복싱, 그리고 한국축구. 복싱이 원정 첫 타이틀을 따 냈듯 축구 또한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까. 6월 태극전사들이 ‘국민 여러분, 16강 먹었습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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