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옷 입은 ‘돌하르방’ ‘붉은 셔츠 신화’ 깨다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양용은이 17일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은으로 만든 높이 71cm, 무게 12kg의 이 우승 트로피는 1916년 제작돼 올해로 93세를 맞이했다. 채스카=AFP 연합뉴스
양용은이 17일 PGA투어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은으로 만든 높이 71cm, 무게 12kg의 이 우승 트로피는 1916년 제작돼 올해로 93세를 맞이했다. 채스카=AFP 연합뉴스
양용은, ‘역전 불허’ 우즈에 ‘역전 드라마’
끝까지 흔들리지 않은 ‘뚝심샷’ 빛나
황제, 집중력 잃고 17, 18번홀 보기 침몰

경력만으로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세계 랭킹 110위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은 3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단 1승을 거뒀을 뿐이었다. 반면 타이거 우즈(미국)는 메이저 통산 14승을 포함해 PGA투어에서 70차례 우승 트로피를 안은 당대 최고 골퍼.

무명에 불과한 양용은과 3주 연속 우승을 노리는 우즈가 PGA챔피언십 마지막 조에서 맞붙으면서 해외 주요 언론은 ‘소문난 잔치가 볼 것이 없게 됐다’는 식의 보도를 토해냈다. 실제로 우즈의 최종 라운드 평균 타수는 69.50타였고 그의 동반자는 73.14타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양용은의 표정에는 여유가 흘렀다. 우즈의 얼굴은 굳어져만 갔다.

중간합계 6언더파로 공동 선두였던 14번홀(파4)에서 나온 양용은의 이글 칩샷이 하이라이트였다. ‘올해의 샷’으로 선정될 정도의 절묘한 플레이에 우즈는 평정심을 잃으며 서서히 무너져 갔다. 우즈는 메이저 대회 마지막 라운드 17, 18번홀에서 연속보기를 하는 보기 드문 장면을 보였다. 양용은은 18번홀(파4) 2.5m 버디 퍼트를 성공하며 이변의 대미를 멋지게 장식했다.

양용은은 2006년 유럽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즈를 꺾고 우승했다. 당시에는 같은 조에서 맞붙을 기회가 없었다. 그랬기에 그는 “오늘 진짜 이긴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이날 경기에 앞서 양용은은 댈러스의 집에서 응원 온 아내 박영주 씨에게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박 씨는 “마지막 날 늘 붉은 티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는 우즈에 맞서 흰색 티셔츠와 바지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내의 정성어린 뒷바라지에 양용은은 과감하게 핀을 공략해 우즈를 압박했다.

이날 5m 이내의 퍼트가 9차례나 홀을 외면하며 퍼팅수가 33개까지 치솟은 게 우즈의 패인이었다. 3주 연속 출전으로 체력과 집중력은 떨어졌다. 메이저 대회에서 선두로 나선 1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신들린 뒷심을 보인 우즈였지만 어떤 위기에서도 제주 돌하르방처럼 흔들리지 않는 양용은의 뚝심에 밀려 역전패의 수모를 안았다.

2004년 이후 처음으로 시즌 메이저 무관에 그친 우즈는 “양용은은 대단했다. 아시아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의 우승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패배를 인정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 양용은 일문일답
이긴다는 생각 못했죠… 아직도 우승 실감 안나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소감은….

“한국에서 난리가 났을 것 같다. 새벽부터 일어나 응원을 하셨을 고국의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하룻밤 자봐야 알 것 같다.”

―역전 불패로 유명한 타이거 우즈와 마지막 조에서 우승을 다퉜는데….

“우즈가 워낙 강했고 2타 차 선두였기에 솔직히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이븐파를 목표로 한 타 한 타에 집중했다.”

―17번홀에서 3퍼트로 보기를 했는데….

“우승을 의식하다 보니 집중력이 흔들렸다. 첫 번째 버디 퍼트를 부드럽게 임팩트하려다가 너무 짧게 갔다. 오히려 정신을 차리는 계기가 됐다. 우즈도 보기를 해 다행이었다.”

―우승을 확신한 순간은….

“상대가 우즈였기에 마지막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18번홀에서 우즈의 세컨드 샷이 그린을 놓쳐 러프에 빠지는 걸 보면서 ‘이젠 됐다’ 싶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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