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기라고요? 스포츠 예술이죠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 프리스타일 축구 - 농구계 스타 권혁부-민경진씨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미국 뉴욕의 할렘에서 온 듯한 청년이 가방에서 농구공 3개를 꺼냈다. 잠시 뒤 노란색 축구 유니폼을 입은 청년이 형형색색의 축구공을 꺼내 들었다.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이들은 30분도 지나지 않아 공원을 장악했다. 먼발치서 지켜보던 사람들까지 주변에 몰려들어 장사진을 쳤다. 박수를 치는 아이에서 사진 찍는 여성까지 반응은 가지각색. 그러나 공통적으로 한 말이 있다. “저게 사람이야?”

○프리스타일 스포츠는 내 운명

이들은 권혁부 씨(24)와 민경진 씨(27). 각각 프리스타일 축구, 농구계에서 알아주는 스타다. 두 사람의 합동 공연은 여의도공원을 후끈 달궜다. 권 씨가 등과 어깨로 축구공을 다루는 고난도 기술을 선보이자 민 씨는 농구공 3개를 동시에 다루는 현란한 기술로 응수했다. 프리스타일 스포츠 배틀(전쟁)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마니아를 넘어 선수가 됐지만 이들이 프리스타일 스포츠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했다.

“3년 전 동네 꼬마가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계속 튕기는 기술)을 하면서 자랑하더라고요.” 권 씨는 이때부터 인터넷을 이용해 프리스타일 축구 독학을 시작했다. 프리스타일 축구는 배울수록 매력적이었다. 그러다 세계적인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 전권 씨(20)를 만났다. 권 씨는 “전 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스승으로 모시며 많이 쫓아다닌 덕분에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며 활짝 웃었다.

민 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본 비디오 한 편이 그의 인생을 결정했다. 우연히 빌린 미국 할렘 묘기 농구단 비디오에 푹 빠졌다. “당시 꿈속에서도 전 농구공을 돌리고 있었어요. 수업 시간에도 머릿속으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고 있었고….” 그에게 프리스타일 농구는 운명이나 마찬가지였다.

○한번 매력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는 스포츠

대중에게 덜 알려진 프리스타일 스포츠 선수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민 씨는 “가장 힘든 건 돈 문제”라며 “하루 8시간 연습하면서 아르바이트를 3개나 했다”고 털어놓았다. 민 씨는 “일부에서 ‘신성한 농구를 왜 모독하느냐’는 지적을 받고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권 씨는 “처음엔 불가능해 보였던 동작이지만 성공했을 때의 희열은 맛 본 사람만이 안다”고 말했다.

선구자라는 사명감도 이들을 공과 하나로 묶은 요인. 민 씨는 “하루는 돈이 없어 여자친구 생일선물도 못 사주는 내가 너무 한심해 인터넷 카페에 ‘그만두겠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 그만두면 후배들은 어떻게 하느냐’는 회원들의 항의 메일을 수십 통이나 받고는 그만둘 생각을 접었다”며 웃었다.

프리스타일 스포츠는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민 씨는 지역축제, 문화행사의 단골손님이 됐고 최근 지상파 방송에도 출연했다. 그는 “예전 같으면 2년 동안 할 공연을 4월 한 달에 다 했다”며 즐거워했다. 권 씨는 “프리스타일 축구 인터넷 카페에 하루 10명 이상 가입자가 늘고 있어 즐겁다”고 했다.

이들에게 프리스타일 스포츠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머리를 모으며 고심하더니 이내 한목소리를 냈다. “프리스타일 스포츠는 흘린 땀만큼 관중의 반응이 와요. 관중의 환호를 보며 보람도 느끼고 반성도 하죠. 그런 의미에서 프리스타일은 ‘거울’ 같아요.”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프리스타일 축구:

발, 무릎, 허벅지, 가슴, 목, 어깨, 머리 등 모든 신체 부위를 이용해 축구공을 다루는 스포츠. 보통 축구 묘기로도 불린다.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는 축구와 달리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혼자서도 즐길 수 있다.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인기가 급상승 중이다. 유럽에선 세계대회를 통해 스타들이 배출되며 프로 선수로 활동할 여건이 조성돼 있다. 젊은 층에선 새로운 문화 코드로 자리 잡고 있다.

:프리스타일 농구:

음악에 맞춰 농구공을 굴리고, 튀기고, 돌리는 등 온몸을 사용해 다양한 동작을 선보이는 스포츠. 미국 뉴욕의 할렘에서 시작돼 지금은 세계대회가 생겼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농구 경기 하프타임 쇼와 TV 광고 등을 통해 알려졌고 새로운 스포츠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한 개 또는 여러 개의 공을 사용하고 두 선수가 주어진 시간 안에 힙합 음악에 맞춰 교대로 퍼포먼스를 펼친다. 심사 기준은 관중의 호응, 기술의 난이도, 숙련도, 창의성 등이다.


▲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 내달 프리축구대회 여는 우희용씨
호나우지뉴도 사인 받아간 사나이

세계적인 축구 스타 호나우지뉴(AC 밀란)에게 사인을 해준 한국인이 있다. 프리스타일 축구의 대부로 불리는 우희용 씨(45·사진). 그는 1989년 2월 5시간 6분 30초 동안 쉬지 않고 헤딩을 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2004년엔 세계프리스타일축구연맹을 창설했다. 이런 그가 후배 프리스타일 축구 선수들을 만나기 위해 2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을 찾았다.

○ 2004년 세계 프리스타일 축구연맹 창설

우 씨는 국내에서 대중적인 스타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유럽에서 여느 스포츠 스타 부럽지 않다. 독일, 영국 등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했고 TV 잡지 광고 모델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6월 갑작스럽게 한국행을 결심하자 주변에선 의아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귀화하라는 권유도 있었고 고민도 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 프리스타일 축구 대중화란 꿈을 더는 미룰 수 없었죠.”

우 씨는 요즘 국내에서도 프리스타일 축구의 인기를 실감한다. “얼마 전 공연을 하러 갔는데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프리스타일 축구를 알더군요. 인터넷 손수제작물(UCC) 동영상, 인터넷 카페 등이 프리스타일 축구 인기를 높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시키는 게 꿈

그는 후배 양성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자비 1억 원을 들여 내달 21일 제1회 한국 프리스타일 축구대회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대회를 통해서라도 프리스타일 축구를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활동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우 씨의 꿈은 프리스타일 축구를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시키는 것이다. ‘목표를 너무 크게 잡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는 대뜸 축구공을 들려 주더니 말했다. “프리스타일 축구의 기본 동작이라도 한번 연습해 보세요. 그러면 제 말 뜻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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