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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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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몇번하니 가수 제의
선수생활중엔 ‘데뷔’ 없을것
피겨 아니면? 사무직은 글쎄…
“스스로 저의 장점을 이야기하려니 쑥스럽네요. 꿈이요? 그렇게 질문하는 기자님 꿈은 무엇이에요?”
‘피겨 여왕’ 김연아(19·고려대)와의 만남은 스케이트 날 위에 선 것 같았다. 기자는 그의 털털한 웃음에 ‘무장해제’ 당했고 날 선 대답에 진땀깨나 흘렸다. 김연아는 세계피겨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고 귀국한 뒤 정신없는 한 달여를 보냈다. “힘들지 않나”라는 질문에 입술을 삐죽 내민 그는 10일 전지훈련을 위해 캐나다 토론토로 떠난다. 한동안 보지 못할 그를 팬들을 대신해 만나 ‘여왕’의 못 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궁금한 그녀
만약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을 하지 않았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빙판을 떠난 그를 상상하기 힘들지만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피겨가 없는 삶을 생각해 보지 않아서 구체적인 대답은 힘들어요. 제 성격을 봤을 때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류나 컴퓨터를 보는 직업은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김연아는 현재 최고의 자리에 올라 있다. 경쟁자라고 불릴 만한 선수도 이제는 없다. 완벽할 것만 같은 그도 부족한 것이 있을까.
“제가 세계선수권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연기를 펼쳤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제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에요. 여전히 부족하고 개선할 부분이 많아요. 더 정확하고 깔끔한 점프, 좀 더 과감한 스케이팅이 욕심나요. 손동작 등 세부적인 부분도 다듬어서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 단 하나뿐인 그녀
김연아의 점프는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그의 빠른 속도를 이용한 길고 높은 점프를 본 뒤 다른 선수들의 점프를 보면 슬로비디오를 틀어 놓았나 싶을 정도다.
“꼭 빨라야 좋은 점프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가 빠를수록 난도가 높기 때문에 심판들에게 그만큼 잘 보일 수 있죠. 빠른 속도의 점프는 어렸을 때부터 굳어온 습관이에요.”
그 습관을 들이기까지 김연아는 코치와 어머니 박미희 씨가 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기에 충실했던 훈련은 지금 큰 재산이다.
“한번 굳어진 습관은 정말 바꾸기 힘들어요. 피겨처럼 정확한 동작을 채점하는 종목에서 나쁜 습관은 큰 장애물이거든요.”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견제도 따른다. 최근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규정과 심판 등 많은 부분을 바꿨다. 일본 선수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매년 규정 변경은 있었고 선수는 그에 적응해야죠. 스포츠에는 룰이 있고 그 룰이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해요. 하지만 국적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일은 없어야겠죠.”
○ 즐거운 그녀
김연아는 훈련 외에는 인터넷과 음악 감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미니홈피를 관리하거나 친구들과 메신저로 대화를 한다. 쇼핑과 음악 다운로드 외에 딱히 하는 것은 없다. 음악은 주로 최근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편이다.
“훈련할 때는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어요. 영화 ‘물랑루즈’를 감명 깊게 봤는데 음악이 좋아서 삽입곡 중에 한 곡을 프로그램으로 사용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평소 쉴 때는 가요를 자주 들어요.”
김연아는 빙판 밖에서도 즐겁다. 방송 등에서 노래와 연예인의 끼를 숨김없이 뽐냈다. 일부에서는 내년 밴쿠버 올림픽 이후 연예인으로 방향 전환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몇 번 노래를 부른 것 때문에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지만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음반 취입 같은 일은 없을 거예요. 가수나 연예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데 운동선수가 병행할 수 있는 분야는 절대 아니죠.”
○ 열망하는 그녀
캐나다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탓에 김연아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국내에서도 바쁜 일정 때문에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었다.
“저희 가족은 말이 많은 편도 아니고 조금 무뚝뚝한 편이에요. 애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데 그냥 저희 집 스타일이에요. 가족에게 미안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앞으로 계속 함께 지낼 가족이니 살아가면서 제가 잘해야죠.”
김연아는 이제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꿈을 이루더라도 그의 또 다른 꿈은 아직 남아 있다.
“어렸을 때부터 피겨만 바라보고 살아서 꿈을 한마디로 표현할 만큼 구체적이지는 못해요. 올림픽 금메달이 인생의 최종 목표가 될 수는 없잖아요. 앞으로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고 싶어요. 사람들도 더 만나고 공부도 더 해서요.”
○ 국민 여동생
김연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한 명이다. 여러 활동 때문에 그는 피곤하다. 열아홉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끔 짜증도 나고 귀찮을 것 같기도 하지만 의외로 어른스럽게 말했다.
“그냥 조금 바쁘게 보내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염려하는 점을 잘 아는 만큼 운동할 때는 선수로서의 본분에 충실할 거예요.”
변장을 해도 이제 거리를 돌아다니기 힘든 그다. 그래도 그는 국민 여동생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마워요. 제가 인기인이고 공인으로서 책임이 따른다는 상황이 이해되기 때문에 아주 힘들지는 않아요. 피곤하거나 답답할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캐나다로 가면 또 금방 잊어요. 오히려 한국이 그리워지죠.”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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