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WBC 스펙트럼] 이대호, 동료를 위해 웃습니다

  • 입력 2009년 3월 21일 07시 32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목표였던 4강진출에 성공했습니다.

2회 연속 4강진출은 대한민국의 야구선수들이 태극기 아래 하나로 뭉쳐 이뤄낸 쾌거입니다.

그 드라마를 쓰기까지 영웅들이 하나둘씩 나타났고, 우리들 가슴에 그들은 승리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팬들은 의문이 하나 있을 겁니다. ‘이대호(사진 왼쪽)가 왜 부진하지?’

그렇습니다. 이번 WBC에서 이대호는 아직 부진합니다. 7경기에 출장해 14타수 4안타로 타율 0.286입니다.

팬들은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대호니까요.

아마도 기대했던 홈런이 터지지 않고, 타점도 2개에 불과한 때문이겠지요. 게다가 결정적인 찬스에서 인상적인 한방을 쳐내지 못한 탓도 있겠지요.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는 아닙니다. 이대호는 일본에서 애리조나로 넘어온 뒤 몹시 아팠습니다.

심한 감기몸살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주사도 맞을 수 없었습니다. 행여나 도핑테스트에 걸릴까봐 감기약도 못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픈 기색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유쾌합니다. 동료들이 자신에게 걱정스러운 눈길을 보내면 오히려 덩치 만큼이나 큰 목소리로 농담을 건넵니다.

동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정말 아픈 것 맞아?”라며 힘내라고 어깨를 툭툭 칩니다.

“내가 아프다니까 다들 와 안 믿노?”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억센 부산 사투리로 투덜거리면 동료들도 웃어버립니다. 그러면 그도 큰 덩치를 들썩거리며 웃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정금조 운영부장은 “이대호가 분위기 메이커다. 덕아웃에서 얼마나 웃기는지. 본인은 아프지만 동료들에게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모른다. 덕분에 덕아웃 분위기는 항상 화기애애하다”고 칭찬 하더군요.

그러나 그는 남몰래 구석진 곳으로 돌아서면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몸도 아프지만 자신의 부진에 마음이 더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인들 왜 멋진 한방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까요.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준결승과 결승에서 극적인 홈런포를 날린 이승엽이 마지막 주연이 됐지만, 우승의 8부능선으로 오르기까지는 사실상 이대호가 홈런포와 결정타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제 몸이 거의 다 나았다고 합니다. 이대호가 2라운드까지의 부진을 떨치고 준결승부터는 ‘공룡타자’의 위력을 다시 재현했으면 좋겠습니다.

20일 일본전에서 비록 안타는 없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중견수에게 잡힌 우중간 빨랫줄 타구가 희망의 빛줄기처럼 보이지 않았는지요.

그가 마지막에 다시 한번 덩치만큼 호탕하게 큰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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