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박사논문 준비 류상선 씨…

  • 입력 2009년 3월 15일 20시 14분


<화제 인물>

2009 서울국제마라톤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슴에 품고 42.195㎞를 거침없이 질주한 참가자들이 유난히 많았다. 출발점인 세종로 네거리와 도착점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이들의 사연을 들어봤다.

●"아내 덕분에 최고기록 세워"

이번 대회에서 생애 8번째 풀코스 완주와 함께 개인최고기록을 경신한 김이수 서울남부지방법원장은 모든 공을 아내 정선자 씨(55)에게로 돌렸다.

"종전 개인최고기록이 4시간 4분이었는데 오늘 3시간 57분 만에 코스를 완주해 마의 4시간 벽도 깨고 개인 최고기록도 세우게 돼 매우 기쁩니다. 가장 힘에 부친 구간을 옆에서 함께 달려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부인 정 씨는 김 원장과 함께 참가신청을 했지만 집안 일 때문에 부득이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이 날 남편이 체력적으로 지친 모습을 보인 35㎞ 지점부터 결승점까지 남편의 곁에서 나란히 달리는 '동반주'를 통해 김 원장에게 힘을 보태줬다.

마라톤에서는 정 씨가 김 원장보다 선배. 김 원장의 마라톤 입문도 정 씨가 2002년 하프코스 완주에 자극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부부는 지난겨울에도 새벽시간 등을 활용해 매일 함께 달리기며 이번 대회를 준비해 왔다.

"아내의 리드와 응원 덕분에 좋은 기록으로 완주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결승선에 법원 직원들이 응원하러 와 있는데 중도에 그만두면 큰 폐가 된다'는 아내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김 원장의 바람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아내와 함께 마라톤을 하는 것.

"함께 마라톤 연습을 하면서 예전엔 법원 일 때문에 자주 못 했던 대화도 늘고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습니다.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내와 건강하게 함께 달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야 마라톤 박사"

전남 여수시 여선 중학교 체육교사인 류상선 씨(45)씨는 전남대 대학원(스포츠심리학 전공)에서 마라톤과 관련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인 '예비 마라톤 박사'다.

마라톤 관련 논문을 쓰기 까지는 마라톤 마니아인 가족, 친지들의 영향이 컸다.

"음악 교사인 아내부터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5학년인 두 딸, 환갑을 훌쩍 넘긴 장모님에 형제들까지 온 가족이 모두 마라톤 마니아입니다. 다들 마라톤 사랑에 푹 빠져있다 보니 박사논문 주제도 자연스럽게 마라톤과 관련한 쪽으로 잡게 되더라구요."

류 씨의 논문은 주제는 일반인(마스터즈) 참가자들이 마라톤에 '중독'되는 심리적·생리학적 효과에 관한 것. 마라톤 완주가 호르몬량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려고 지난해 보성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서 그 자신이 '실험대상'을 자처해 완주 전후에 혈액을 채취하기도 했다.

류 씨에게 서울국제마라톤은 2000년 풀코스 완주의 짜릿함을 맛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아마추어 마라토너에게 꿈의 기록이라는 '서브 쓰리(풀코스를 세 시간 내에 완주하는 것)'를 세 번이나 달성한 인연이 깊은 대회다.

그는 "마라통은 건강에도 유익하고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신이 내린 최고의 보약"이라며 "박사 논문도 국민들이 마라톤을 즐길 수 있게 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스케치>

○…세종로 사거리를 출발한 지 5시간 50분 만에 결승점에 도착한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시의 주상배 씨(67·의사). 그는 담도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 중인 동생의 사진과 이름을 가슴에 달고 뛰었다.

"부모님께 비슷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남매지간인데 오빠인 제가 풀코스를 완주하는 모습을 보고 병마와 싸울 수 있는 기운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출전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올해로 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 세 번째 참가한다는 시각장애 마라토너 염동춘 씨(49)는 '해피레그'로 불리는 도우미 신영수 씨(50)의 팔을 붙잡고 코스를 내달렸다. 염 씨는 "시각 장애인에게 마라톤은 완주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우미와 함께라면 결코 하지 못할 일은 아니다"며 "이번 대회에도 시각장애인마라톤동호회에서 10명도 넘는 시각장애인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 '마라톤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공명선거로'라고 적힌 작은 깃발을 얼굴 양 옆에 끼고 달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마라톤 동호회 회장 김철 씨.

그는 "마라톤을 하다보면 이보다 정직하고 속임수를 쓸 수 없는 운동이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며 "마라톤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정치인들이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대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 무지개 색깔의 퍼머 머리 가발을 쓰고 풀코스를 완주한 신현만(50) 씨는 2003년 20년간 근무한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한 뒤 공인중개사로서 제2의 인생을 준비중이라고 했다.

"2003년 대회에서 이 가발을 쓰고 달려서 3시간 10분의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한 적이 있다"며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당시의 좋은 기록을 생각하며 다시 이 가발을 꺼내 썼다"고 말했다.

우정열기자 passion@donga.com

신민기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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