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공통점이 많다. 사격 입문기부터 남다르다. 김유연은 중학교 1학년 때 사격부 오디션을 보러간 친구를 따라갔다가 10.9점을 쐈다. 인생의 첫 번째 발이었다. 차영철은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해 사격에 소질을 보였다. 육군참모총장배에서 2위를 한 뒤 24세 때부터 정식선수가 됐다.
김유연은 공기소총을 잡다가 24세 때 화약총으로 바꿨다. 남들보다 늦었지만 노력으로 시간차를 극복했다. 차영철은 “선수시절에는 잘 때도 엎드려 쏴 자세로 잤다”고 했다. 그 선생에 그 제자. 김유연은 “얼마 전 꿈속에서 사격을 했는데 격발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면서 “새벽에 깼는데 손가락에 그 감이 남아있었다”고 했다. 바로 집을 나서 택시를 잡았다. 인천종합사격장에서 새벽에 울린 총성은 김유연의 것.
차영철은 첫 번째 국제대회였던 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 2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승을 꼭 빼닮은 김유연은 이번이 첫 국제무대. 징조가 좋다. 둘의 비법은 이미지트레이닝. 차영철은 “86년과 88년 모두 마음을 다스리면서 부담감을 떨쳐냈다”고 했다. 김유연은 잠자리에 들기 전, 사로에 서서 취할 모든 동작과 10점을 쏘는 상상들을 몸 안에 아로새긴다. 차영철은 그 모든 감각들을 글로 쓰게 하고 있다. 김유연의 일기장은 사격이야기로 빼곡히 차 있다. ‘579, 581, 583(600점 만점).’ 김유연의 최근 기록은 계속 상승세다. 차영철은 “본인 기록만 경신한다면 내 은메달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창원=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