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의 ‘연습생 신화’를 꿈꾸며…

  • 입력 2008년 2월 10일 02시 52분


지난달 열린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불과 22명만이 지명을 받았다. 일반인이라면 여러 곳에 입사 지원서를 넣을 수 있겠지만 농구 선수는 드래프트가 일자리를 얻는 유일한 기회다. 드래프트 현장에서 낙점 받지 못한 선수와 부모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드래프트에서 떨어졌다고 농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수련 선수(연습생)로 유니폼을 입는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재미교포 쌍둥이 최금동, 은동(22) 형제는 각각 모비스, KT&G의 수련 선수로 뽑혔다. 형제는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수련 선수로 시작했지만 코트를 누비는 선배들이 형제의 희망이다.

KCC 이중원은 그 대표 주자다. 2006년 드래프트에서 10개 구단 모두로부터 외면당했던 이중원은 2006∼2007시즌 팀에서 주전 선수들이 잇달아 부상을 당한 덕분에 경기에 나갈 기회를 잡았다. 수련 선수라도 정규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별다른 제한이 없다. 이중원은 올 시즌 드디어 정식 선수가 됐고 최고의 식스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에는 LG 백천웅, SK 최종훈, 동부 정의한이 정식 선수로 신분 상승했다. 한국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자리 잡은 ‘철인’ 주희정(KT&G)도 고려대를 중퇴하고 수련 선수로 프로 유니폼을 입었고 ‘사랑의 3점 슈터’로 이름을 날린 여자 프로농구 신세계 정인교 감독 역시 2001년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갈 곳을 찾지 못해 32세의 나이에 수련 선수가 됐던 경험이 있다.

수련 선수는 구단 재량으로 선발한다. 드래프트를 신청한 선수면 누구라도 뽑을 수 있다. 2004∼2005시즌에는 7명의 수련 선수가 나왔고 지난해에는 3명이 나왔다. 연봉은 1500만∼1800만 원을 받는다. 정식 선수의 최저 연봉은 3500만 원이다.

연봉이 많고 적음을 떠나 농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위안이다. 프로야구 국내 통산 최다홈런(340개)을 기록한 한화 장종훈 코치는 ‘연습생 신화’의 주인공이다. 지난해 두산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이종욱 김현수 손시헌 트리오 역시 연습생 출신이다.

당장은 허드렛일도 해야 하는 수련 선수지만 그들은 이런 글귀를 가슴 속에 새기고 있을지 모른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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