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샷 No1, 탱크 No1… 17번홀서 끝!

  • 입력 2007년 7월 10일 03시 00분


AT&T내셔널 초대 챔프 등극… 3만7000갤러리 환호

최경주(37·나이키골프)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모래다.

전남 완도 출신으로 바닷가 백사장에서 하도 공을 많이 쳐서 벙커샷에는 이골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닳아 버려 교체한 웨지만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 최경주가 우승의 향방을 결정지을 경기 막판에 벙커샷 상황을 맞았다.

15번홀 버디에 힘입어 2위 스티브 스트리커(미국)에게 2타 앞선 선두를 달리다 17번홀(파4·437야드)에서 세컨드 샷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뜨린 것. 3번 우드 티샷에 이어 190야드를 남기고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노렸으나 공이 오른쪽으로 밀렸다. 이 위기에서 모래를 흩뿌리며 벙커에서 빠져나온 공은 그린을 구르더니 마치 자석에 끌리듯 컵 속으로 사라졌다.

승리를 확신한 최경주는 오른 주먹을 날리는 어퍼컷 세리머니를 한 뒤 모자를 벗어 열띤 응원을 펼치던 200여 갤러리의 환호에 답했다. 최경주가 3타 차로 달아나며 우승을 결정짓는 순간이었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 내내 벙커샷 감각이 좋았다. 사실 집어넣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컵에 가깝게 붙여 파 세이브나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주최자인 타이거 우즈는 “벙커샷을 정말 잘한다. 한 수 가르쳐 달라”며 웃었다.

최경주가 시즌 2승째를 올린 AT&T 내셔널은 우즈가 올해 신설한 대회다. 지난해까지 ‘디 인터내셔널’이란 타이틀로 열리다 올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개최 취소 결정이 내려졌는데, 우즈가 자주 출전하지 않아 흥행이 어려웠다는 게 그 이유였다.

결국 결자해지로 우즈가 대회를 주관하기로 결정해 성사됐다.

미국의 독립기념일 주간에 열렸기에 참전 용사와 미군이 대거 초청됐고 코스 곳곳에는 성조기가 내걸렸다. 이런저런 관심이 집중되면서 마지막 라운드에 3만7211명의 갤러리가 몰려든 것을 포함해 대회 기간 14만 명에 이르는 팬이 운집했다.

이런 뜨거운 관심 속에서 최경주는 초대 챔피언에 등극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작 우즈는 육아와 대회 진행에 신경 쓰느라 바빴던지 17, 18번홀 연속 버디로 기분 좋게 마무리한 데 만족하며 공동 6위(2언더파 278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메이저대회 우승에 목마르다”

―우승 소감은….

“믿어지지 않는다. 잭(니클로스)과 타이거(우즈)의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올라 자랑스럽고 환상적인 추억이 될 것 같다. 대회 기간 뜨거운 성원을 보내 준 교포 여러분께 매우 감사드린다. 미국에 와서 가장 열띤 응원을 받았다.”

―두 대회(메모리얼 토너먼트, AT&T 내셔널) 가운데 어떤 우승이 더 의미가 있는가.

“트로피는 타이거가 준 게 훨씬 무겁더라(웃음). 니클로스는 내 어릴 적 영웅이었으며 우즈는 현재 최고의 선수다. 뭐라 비교하기 힘들며 둘 다 값지다.”

―탱크라는 별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4년 전 이언 베이커핀치가 해설 도중 처음 붙여 줬다. 오늘 어떤 교민이 태극기에 ‘고(GO) 탱크’라고 적힌 응원 문구를 흔드는 것을 봤다. 기분이 아주 좋았다. 탱크는 내 삶의 방식과 잘 맞는다. 뒤돌아보지 않고 항상 앞으로 전진한다는 의미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다.”

―앞으로 일정과 목표는….

“12일에 브리티시오픈이 열리는 스코틀랜드 앵거스로 떠난다. 내 생애 목표는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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