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킥으로 열고 중거리포로 닫았다

  • 입력 2006년 6월 14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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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프리킥선수들도 응원단도 모두 숨을 죽였다. 이천수가 13일 토고와의 경기 후반 9분 혼신의 힘을 다해 프리킥을 하고 있다. 이천수의 발을 떠난 공은 천금같은 동점골이 됐다. 프랑크푸르트=김동주  기자
절묘한 프리킥
선수들도 응원단도 모두 숨을 죽였다. 이천수가 13일 토고와의 경기 후반 9분 혼신의 힘을 다해 프리킥을 하고 있다. 이천수의 발을 떠난 공은 천금같은 동점골이 됐다. 프랑크푸르트=김동주 기자
환상의 중거리 슛‘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후반 27분 장쾌한 중거리슛을 날린 뒤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의 결승골이자 한국의 원정 월드컵 첫 승을 확정짓는 골이었다. 프랑크푸르트=김동주  기자
환상의 중거리 슛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후반 27분 장쾌한 중거리슛을 날린 뒤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의 결승골이자 한국의 원정 월드컵 첫 승을 확정짓는 골이었다. 프랑크푸르트=김동주 기자
안정환(30·뒤스부르크)과 이천수(25·울산 현대). 둘은 역시 한국축구의 간판스타였다.

이천수의 동점골과 안정환의 결승골.

둘이 터뜨린 골로 한국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국으로서의 체면을 세웠다.

이천수의 골은 한국축구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터뜨린 통산 20호 골이었고 안정환은 월드컵 개인 득점 3호 골로 아시아 선수로는 월드컵 본선 최다 득점자가 됐다.

안정환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개인적으로 마지막 월드컵이다.

대표선수로서 마지막 무대라는 각오로 뛰겠다”고 말했다. 배수의 진을 치고 임한 독일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제왕’임을 입증한 것이다.

안정환은 축구선수로는 최정상의 길을 걸어왔지만 항상 화려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997년 부산 대우 입단 이후 99년 K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며 국내 무대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안정환은 2000년 한국 선수로서는 최초로 이탈리아 리그 페루자에 입단했다.

안정환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결승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전 세계에 화려하게 각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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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 일본 J리그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마리너스를 거쳐 프랑스 FC메스 등 여러 팀을 거치며 슬럼프를 겪었다. 하지만 역시 스타는 큰 경기에 강했다. 토고전 한방으로 안정환은 과거의 화려한 명성을 되찾았다.

안정환의 역전골 앞에는 재간둥이 이천수의 동점골이 있었다.

태극전사 중 형형색색의 빛나는 머리카락만큼이나 톡톡 튀는 이천수 역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부진을 보이다 지난해 7월 울산 현대로 복귀했다.

172cm, 64kg의 이 조그마한 청년. 그는 화려한 입담으로 ‘혀컴’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의 프리킥 실력 또한 잉글랜드의 데이비드 베컴 못지않다.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대부분의 프리킥을 그에게 맡겼고 그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이천수는 지난해 12월 K리그 MVP에 오른 뒤 “스페인에서 너무 힘들어 어머니를 붙잡고 펑펑 울었다”고 털어놓았다. 네티즌들이 올린 비방을 보고는 “내가 왜 태어나서 어머니가 이런 소리까지 듣게 해야 하냐”는 절망감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천수는 2006년 6월 13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때보다 더 뜨겁고 더 감격스럽고 더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 눈물은 누구에게도 감출 필요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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