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구 WBC 4강진출]딱! 한방에 ‘日沒’… 5년恨 날려

  • 입력 2006년 3월 1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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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8회초 1사에서 2, 3루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결승타를 날린 뒤 승리를 예감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1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애너하임=연합 뉴스
“내가 해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8회초 1사에서 2, 3루 주자를 모두 불러들이는 결승타를 날린 뒤 승리를 예감한 듯 두 주먹을 불끈 쥐고 1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 애너하임=연합 뉴스
이종범(36·기아)은 갓 30대에 이른 한창 나이에 심한 원형 탈모로 고생했다.

일본프로야구 주니치에서 뛰던 2000년 후반부터 2001년 중반까지. 머리 곳곳에 500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나 팬들을 안쓰럽게 했다.

원인은 극심한 스트레스. 한국에서 ‘야구천재’로 대접받던 이종범은 일본 생활 말년에 벤치 선수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첫해인 1998년에 당한 사구(死球)가 결정적이었다. 6월 23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투수 가와지리 데쓰오의 역회전 공에 오른쪽 팔꿈치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이종범은 그날 이후 3개월간 운동장에 나오지 못했다. 이후에도 사구 공포증 때문에 몸쪽 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럴수록 일본 투수들은 집요하게 몸쪽을 물고 늘어졌다. 이종범은 2001년 8월 결국 한국에 복귀했다. 한국에 오자 원형 탈모는 말끔히 나았다.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그런 이종범에게 한풀이의 무대였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는 마침내 일본에 진 빚을 갚을 수 있었다.

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에서 그는 몸을 바쳐 뛰었다. 몸에 맞는 볼 2개를 맞고 안타 하나를 쳤다. 8회 안타는 후속 이승엽(요미우리)의 홈런으로 역전의 발판이 됐다.

16일 미국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본선 3차전. 이종범은 0-0 동점이던 8회 1사 2, 3루 찬스에서 공교롭게도 한신 선수인 후지카와 규지의 3구째 직구를 통타해 좌중간을 가르는 결승 2타점 2루타를 쳐냈다.

이 한 방으로 한국은 예선 포함 6전 전승으로 샌디에이고에서 열리는 4강에 진출했고, 일본은 17일 미국과 멕시코의 경기 결과를 초조하게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해야 했다.

이종범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다. 오늘 일본을 이겨서 옛날의 아픈 추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종범은 또 “일본과는 앞으로 어떤 대회에서 다시 맞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도 했다.

김인식 감독이 이번 대회 한국의 4강행 일등 공신으로 꼽은 것도 주장을 맡은 이종범이었다. 김 감독은 “이종범이 리더로서 잘해 줬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만 해도 고마운데 매 경기 결정적인 안타까지 쳐 줬다”고 말했다.

5년간 묵었던 이종범의 한이 이날 하루 눈 녹듯 사라졌다.

애너하임=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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