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춤' 추는 청각장애 치어리더

  • 입력 2004년 12월 23일 16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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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왼쪽 귀는 거의 캄캄하고 오른쪽 귀도 어둡기는 마찬가지. 대화할 땐 큰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다. 어느 땐 불러도 잘 듣지 못해 어깨를 두드려야 한다.

프로농구 SK 치어리더 배수현씨(20). 청각장애인인 그는 놀랍게도 치어리더 중에서도 춤을 가장 잘 추는 댄싱 퀸이다. 그는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리는 SK의 홈경기 때마다 댄싱 퀸의 특권인 '솔로 무대'를 펼친다. 보아의 노래 '마이 네임'에 맞춰 신나는 율동으로 플로어를 달군다. 수십 명의 팬들을 몰고 다닐 정도. 경력 1년7개월 밖에 안되는 애송이지만 춤 실력만큼은 프로농구 10개 팀 치어리더 80명중 몇 손가락 안에 든다.

리듬은 어떻게 맞출까. 다행히 실제 공연 때는 음악소리가 워낙 커 율동하는 데 큰 애로는 없다. 문제는 동료들과 단체연습 할 때. 배씨는 "옆 사람 동작을 슬쩍슬쩍 보거나 마음속으로 카운트하며 율동을 한다"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털어놓는다. 하지만 아무래도 매끄럽지 못할 때가 있을 수밖에. 배씨가 소속된 공연기획전문업체 에치에스컴의 박보현 치어리더 팀장(26)은 "가끔 단체 연습 때 수현이가 음악이 끝난 뒤에도 혼자 율동하고 있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말한다.

배씨는 어릴 때부터 춤추는 것을 좋아했다. 친구들도 힙합클럽 등에서 춤을 통해 만난 사람들이 전부일 정도. 배씨는 지난해 6월 청각 장애를 숨기고 치어리더연습실로 찾아가 무조건 오디션 보게 해 달라고 졸랐다. 동료들은 배씨가 워낙 밝고 내색을 하지 않아 한동안 장애가 있는 줄도 몰랐다. 말씨가 약간 어눌하고 가끔 엉뚱한 반응을 하는 배씨를 '사오정'이라고 놀린 것도 그 때문.

배씨의 한달 수입은 100만원 안팎. 그는 이 돈으로 올해 전문대 무용과에 입학했다. 그동안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 했던 것. 자궁암 후유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의 병원비도 그가 책임지고 있다.

박 팀장은 "연습벌레에요, 매일 3~4시간 연습하는데 수현이는 6시간이에요. 남들보다 1시간 먼저 나와 연습하고 또 끝난 뒤에 연습하고…."라며 그의 피나는 노력을 말했다.

배씨의 꿈은 '전문적인 치료를 한번 받아 보는 것'과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는 것'. 초등학교 2학년 때 왼쪽 청각 이상을 발견했지만 병원에 가본지 하도 오래돼 현재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치료가 가능한지 전혀 알 수 없다.

배씨는 "시련을 겪어야 성숙해지는 거죠. 지난 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그는 '희망의 춤'을 추고 있다.

전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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