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29일 30일째 "무한대(infinity)의 남극"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5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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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운행 중 휴식중인 오희준(좌) 대원과 강철원 대원.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티엘 산맥(thiel mountains)이다.
29일 운행 중 휴식중인 오희준(좌) 대원과 강철원 대원. 뒤로 멀리 보이는 산이 티엘 산맥(thiel mountains)이다.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4.2℃

풍속 : 초속 4.2m

운행시간 : 07:55-19:55(12시간00분)

운행거리 : 32.5km (누계 : 673.8km)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 456.8km

야영위치 : 남위 85도 54분 630초 / 서경 81도 32분 519초

고도 : 1,596m / 86도까지 남은 거리: 9.93km

▼무한대의 설원 속에서!▼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가 그의 동료와 함께 남극대륙을 횡단하고 집으로 돌아가 그의 다섯 살 된 딸로부터 남극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는데 메스너의 대답은 한가지였다.

"무한대(infinity)"

어제 올라선 언덕 너머로 들어선 탐험대는 남극탐험을 시작한 이래 가장 넓고 평평한 설원지대로 들어섰다. 뒤로 밀려났던 thiel mountains의 봉우리들만이 꼭대기 부분만을 살짝 보여줄 뿐, 사방을 둘러봐도 설원은 메스너의 말처럼 '무한대'였다. 마치 쟁반을 엎어 놓은 듯한 설원위로 탐험대가 올라서 있는 느낌이다. 밀가루처럼 고운 눈으로 덮인 무한의 설원은 햇빛을 받아 순백으로 반짝인다.

10시 경, 휴식을 마치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박대장이 걸음을 멈추고 대원들을 기다린다. 누군가 설원을 가로질러 간 썰매자국이 선명하다. 고립무원의 설원에서 누군가를 만난 것처럼 반가움이 앞선다. 우리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어디선가 걷고 있을 그의 존재가 궁금하다. 강철원 대원은 한사람이 지나간 것 같다고 하고 다른 대원들은 두 사람인 것 같다고 한다. 두 사람이라면 영국의 펜 해도우와 사이먼 머레이 일행일 가능성이 크다. 해도우는 지난 봄 단독으로 북극점에 도달했었다. 그는 이번에 홍콩에 살고 있는 64세의 머레이와 한번의 보급을 받아 남극점까지 간다고 했었다. 그들의 지나간 자국을 잠시 뒤따른다. 목표로 하는 방향이 한 방향이므로 따라가서 손해 볼일이 아니다. 그런데 박대장은 얼마가지 않아 그들의 흔적을 버린다. 나침반을 보니 우측 서경 82도 쪽으로 향하고 있어 우리가 잡고 있는 방향-서경 81도 30분-과는 다르기 때문이란다. 비록 썰매자국 이지만 헤어지니 섭섭하다. 우리는 우리 길을 다시 간다. 얼마를 가다보니 또 그 썰매 자국과 만난다. 이번에는 좌측(서경 81도)쪽으로 꺾여 지나간다. 방향을 지그재그로 잡고 갔다는 얘기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 모르나 이런 운행을 계속하고 있다면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 하다. 무사한 운행을 바라면서 그 흔적과 점점 멀어진다.

넓은 설원은 분설지역이다. 스키를 신지 않으면 발이 계속 빠진다. 스키에 씰(뒤로 밀리지 않게 하는 인조 천)을 붙이지 않은 오희준 대원은 계속 푹푹 빠지는 상태로 걷는다. 힘 좋기로 하면 탐험대원 중 제일이다. 막내 이현조 대원은 스키의 바인딩이 다른 대원들과 다르다. 신발을 끈으로 묶는 형태로 고정 틀과 신발의 모양이 잘 맞지 않아 두 시간 정도 신다가 불편하다며 벗고는 그냥 걷는다. 박대장과 이치상, 강철원 대원은 신발 앞쪽의 철심을 바인딩에 고정시키는 신형 스키를 신고 비교적 여유 있는 운행을 한다. 강철원 대원은 스키가 걷기에 너무 편하다며 탐험을 마치고 돌아가면 스키를 구해준 분에게 꼭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한다. 스키를 신고 걸은 지 삼일 만에 적응이 되었나보다. 좋은 현상이다.

고도가 1,500m대로 높아지면서 설원의 상태 때문인지 12시간을 걸었는데도 32.5km를 걷고 운행을 마쳤다. 피로가 누적돼서 그런 것은 아닐까. 고도가 높아진 때문일까. 하루 이틀 더 걷다보면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서울-부산 간의 거리만큼 남았다. '죽었다 생각하고 보름만 고생하자'는 박대장의 말에 대원들은 피곤한 상태지만 결의에 찬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내일 아침 간식시간이면 86도를 넘어선다는 생각에 밝은 표정들이다. 86도부터는 4일에 1도씩이다.

사흘간의 걷기 좋던 날씨가 오늘부터는 대원들의 몸을 움츠러들게 싸늘하다. 날씨야 어찌됐건 남극점을 향한 발걸음은 내일도 계속된다.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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