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들 “아이 러브 코리아”한국교민 “터키 이겨라” 화답

  • 입력 2002년 6월 30일 01시 15분


29일 한국과 터키는 ‘나와 너’가 아니었다. ‘우리’였다.

이날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관람을 위해 이스탄불 시내 매디슨 호텔 로비에 모인 한국 교민 300여명과 터키인들은 팀을 가릴 것 없이 한 골이 들어갈 때마다 얼싸안고 뛰었다.

터키가 골을 넣었을 때 한국 교민들은 “엔 뷰육 투르키에(터키 이겨라)”를 외쳤고, 한국이 골을 넣었을 때 터키인들은 “아이 러브 코리아”를 연호했다. 경기가 끝난 뒤 양팀 선수들이 함께 손을 잡고 답례할 때는 서로 얼싸안고 울었다.

48년 만의 월드컵 출전에서 3위의 위업을 달성한 터키인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이스탄불 시민들은 시내 중심가 탁심 광장에서 밤새도록 축제를 벌였다. 이날만은 터키인들의 가슴을 옥죄어온 경제위기와 정정 불안을 떨쳐버렸다.

정지섭(鄭志燮) 한인회장은 “경기 시작 전 한국 교민들이 태극기와 터키 국기를 들고 이스탄불 시내를 돌자 주변의 터키인들과 차량들로부터 엄청난 환호와 경적 소리가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이번 월드컵은 두 나라에 진정한 ‘형제 국가’의 의미를 되새겨준 한판이었다. 터키는 한국전 당시 참전국들 중 세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견, 전사자 700여명을 포함한 30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한국의 혈맹(血盟).

29일 한국 교민들이 응원전을 벌인 호텔 로비도 호텔 측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것. 앞서 한국대사관 측과 현지 한국 기업들은 월드컵 기간 중에 터키의 한국전 참전용사 40여명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주선했다. 대사관 측이 한국 내에 개설한 인터넷 카페 ‘터키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가입자가 이미 1만명이 넘었다.

김영기(金永基) 대사는 “99년 터키 지진 당시 동아일보가 중심이 돼 터키인 돕기에 나서는 등 두 나라는 전통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다”면서 “최근 다소 소홀해진 감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진정한 우방으로 거듭나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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