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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6월 29일 0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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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대회 개최국 포르투갈은 유럽축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았고, 힘이 아닌 기술축구로의 변화를 이끌어낸 반란 그 자체였다.
프랑스의 벽에 걸려 아깝게 4강문턱을 넘지 못했으나 포르투갈은 예선리그서 ‘축구종가’잉글랜드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것을 시작으로 루마니아, 독일, 터키를 차례로 꺾고 4강에 진출해 전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60년대 후반 ‘검은 표범’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은 80년대 후반이후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에 밀려 유럽축구 변방으로 전락했다.
유럽지역 예선조차 잇따라 탈락, 14년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해 대회 개막전까지도 잉글랜드, 독일, 루마니아가 속한 A조에서 최약체로 평가됐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이같은 예상을 비웃듯 플레이메이커 루이스 피고, 첫 해트트릭을 기록한 세르지우 콘세이상 등을 밀레니엄 스타로 탄생시키며 돌풍을 일으켰다.
포르투갈의 돌풍은 10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9년 사우디아라비아, 91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19세이하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를 2연패했던 파울로 수자, 주앙 핀투, 루이 코스타 등 우승멤버 9명이 20대 후반의 무르익은 기량으로 다시 뭉친 것.
풍부한 인적자원을 바탕으로 피구의 노련한 경기운영, 2년전부터 사령탑을 맡은 움베르토 코엘료 감독의 지도력이 더해지면서 포르투갈은 30년전의 영광을 재현할 모든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비록 포르투갈이 결승진출에는 실패했으나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반란’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지 않고 2002년 한일월드컵에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