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발언 계기로 본 한국축구 문제점]

  • 입력 1998년 7월 26일 20시 27분


《‘승부조작 등이 저질러 지는 축구판’. 차범근 전축구대표팀감독이 축구계를 향해 던진 이 한마디는 일파만파의 파문을 일으켰다. 한국축구 최고의 스타로 활약했고 월드컵팀 감독까지 맡았던 그가 한 이 말은 진위 여부를 떠나 축구계의 문제점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게 한다. 과연 한국축구는 무엇이 문제일까. 한국축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국가대표팀과 프로축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국가대표팀▼

3월16일 서울 종로구 대한축구협회 건물 지하 1층 초등학교축구연맹 사무실.

차범근 대표팀 감독을 출석시킨 가운데 축구협회 기술위원회가 열렸다.

보름전인 3월1일 벌어진 다이너스티컵대회에서 한국대표팀이 일본에 1대2로 패한 데 대한 원인분석과 대책마련을 위한 자리였다.

하필이면 삼일절날 일본에 지는 바람에 “감독을 교체하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비등해진 비난 여론속에 벌어진 회의에서 기술위원들은 98프랑스월드컵에서 목표 달성을 위해 차감독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불과 3개월 후. 월드컵에서 한국이 멕시코와 네덜란드에 연이어 참패하자 프랑스 현지에 가 있던 기술위원들과 차감독 사이의 불화설이 그치지 않더니 결국 대회 도중 감독 교체라는 극약 처방이 내려졌다.

기술위원들은 “차감독이 고집 불통이라 주위의 말을 듣지 않고 선수 기용이나 전술을 운영하다보니 패할 수 밖에 없지 않느냐”며 분개했고 차감독은 부인 오은미씨가 기술위원들을 귀찮은 ‘파리떼’로 묘사할 정도로 기술위원들의 존재에 부담을 느끼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대표팀 운영의 두축인 기술위원회와 감독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이처럼 심각한 상태였으니 월드컵에서의 참패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술위원회와 차감독의 관계가 마찰을 빚을 수 밖에 없던 원인은 명확한 권한 구분이 돼 있지 않는 데다 서로간에 진솔한 대화가 부족했기 때문.

한 원로축구인은 “기술위원들이나 감독은 모두 학교나 프로 혹은 대표팀에서 같이 공을 차던 선후배인데 왜 한마음을 이루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며 개탄했다.

그는 “선수 기용이나 전술 운영은 감독의 몫으로 선수 선발과 훈련 계획 및 상대팀 분석은 기술위원들이 맡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뒤 양쪽이 대화를 통해 정보를 주고 받음으로써 최상의 전력을 갖추는게 대표팀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축구인들이 이처럼 의리가 없고 분열되어 있는지 몰랐다.”

대한축구협회장을 역임했던 한 유명 인사가 후임 축구협회장에게 했다는 이 말을 축구인들은 다시한번 새겨보아야 할 때이다.

▼승부조작▼

“고의로 경기에 져준 일은 절대 없었다.” “설령 감독이 고의 패배를 지시했더라도 11명이 모두 이 말을 따르겠는가.”

차범근전감독의 프로축구 승부조작 발언에 대해 91년부터 94년까지 차전감독이 현대축구단 사령탑을 맡을 때 현대 소속으로 뛰었던 정종수(현대 코치) 정종선(LG) 등 대부분의 선수들은 “고의 패배를 지시받은 적도 없으며 선수들끼리 담합해 일부러 패배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과연 프로축구에서 승부조작은 가능할까.

축구도박이 성행하는 말레이시아에서는 거액의 상금이 걸린 경기에서 선수들이 담합해 승부를 조작하는 사건이 발생해 아시아축구연맹으로부터 호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축구전문가들은 승부조작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주전 수비수 한두명만 짜면 된다고 지적한다. 상대팀 골잡이를 전담하는 수비수가 결정적 기회에서 슬쩍 몸을 비키기만 해도 골이 되기 때문.

그러나 대기업들이 프로축구단을 운영하기 때문에 감독이나 선수들은 회사의 명예를 위해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하고 외국 프로리그처럼 도박이 성행하지도 않는 국내 프로리그에서 이런 식의 승부조작은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

단 신인드래프트를 실시할 때 그 해 프로축구의 성적 역순에 따라 선수를 우선 선발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리그 후반기 때 이미 우승권에서 멀어진 팀중에는 후보 선수들을 내세우는 등 전력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최하위를 차지해 드래프트에서 우선 지명권을 따내려는 ‘미필적 고의의 패배 시도’는 있을 수가 있다는 지적.

결국 차전감독은 자신이 4년 동안 프로축구 감독을 하면서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이유중의 하나로 자신이 이끄는 팀을 물먹이려고 다른 팀들이 승부조작을 했다고 몰아붙였지만 이 부분에서는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 프로 감독은 “동기동창생이라도 그라운드에서는 적으로 돌변해 최선을 다하는게 프로 세계인데 다른 팀 우승을 위해 져준다는게 말이 되느냐”며 “드래프트제의 개선 등을 통해 승부조작의 싹조차 없애는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권순일·배극인기자〉stt7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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