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월드컵공동개최 좌담회]

  • 입력 1997년 5월 2일 08시 44분


<<숨가빴던 한국과 일본의 2002년 월드컵 유치 경쟁이 공동개최로 판가름난지 오는 31일로 만 1년. 동아일보와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19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鄭夢準(정몽준)대한축구협회장, 나가누마 겐(長沼 健)일본축구협회장과 車範根(차범근) 한국대표팀 감독, 가모 슈(加茂 周) 일본대표팀 감독 등 양국축구를 대표하는 4인을 초청, 「2002년 월드컵공동개최기념 한일축구 수뇌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좌담회는 동아일보―아사히 신문의 월드컵 공동사업의 하나로 「2002년 한일협력시대」특집(97년 신년호)과 한일대학축구선발팀 경기(4월13일·도쿄) 공동주최에 이어 세번째 기획. 동아일보 李鍾世(이종세)체육부장과 아사히신문 하시모토 다케오(橋本 武雄)운동부장의 공동사회로 열린 이날 만남에서 양국축구 수뇌들은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얘기들을 털어놓으며 「하나」가 됐다. 서로에 대한 서슴없는 비판도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겸허함도 있었다. 오후 4시부터 두시간으로 예정된 토론은 오후 7시가 지나 마무리됐고 양국은 오는 21일의 한일축구대표팀 친선경기(도쿄)의 2차전을 9월17일 서울에서 열기로 합의하는 성과도 거뒀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결실은 양국이 「불행한 과거」를 딛고 「친구」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었다. 좌담회장을 나서는 이들의 표정에서 그 부푼 희망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공동정리〓동아일보 이훈·아사히신문 다나카 모토유키 기자〉 ■ 『한-일 공동보조 가장 중요』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양국이 협조해야 할 당면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가누마 회장〓『양국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방침에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회장과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고 실무자들도 한달에 한번 이상 협의를 갖고 있습니다. 오는 6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FIFA와 한일 양국이 참여하는 재정관련 회의가 있습니다. 저는 안정된 재정바탕위에서 이번 월드컵을 개최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한일 양국은 FIFA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주장할 것은 주장해야 한다고 봅니다』 ▼정회장〓『FIFA에서 이번 3자간 회의를 상당히 합리적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재정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익 분배에 연연하기 보다는 공동개최 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양국이 이익을 좀 더 챙기겠다고 다툰다면 점잖지 못한 행동이겠지요』 ―6일 열리는 3자간 회의에서는 2002년 대회의 재정문제가 심도있게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나가누마 회장〓『FIFA가 한일 양국에 희생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며 재정문제는 양국간에 균형만 잡히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2002년 월드컵으로 한일양국이 사이좋게 된다면 이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대단한 「흑자」일 겁니다. 월드컵은 1930년에 시작됐지만 그동안 어느 월드컵을 통해서도 두 나라가 사이좋게 됐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공동개최로 열리는 이번 월드컵은 역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대회가 될 것입니다』 ▼정회장〓『월드컵은 올림픽과는 달리 거의 모든 대회가 흑자입니다. FIFA의 가장 큰 수입은 TV중계권료와 공식 스폰서 수입인데 2002년부터 TV계약이 새로 이뤄지기 때문에 금액도 많이 늘어나고 FIFA 재정도 상당히 넉넉해질 것입니다. FIFA는 이같은 여유를 바탕으로 2002년 월드컵의 합리적인 재정계획을 세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관례적으로 FIFA와 개최국이 나눠가졌던 입장수입도 한국의 입장수입은 한국에, 일본의 입장수입은 일본에 줄 것이며 스폰서 수익도 마찬가지겠지요. 한국과 일본은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공동보조를 취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 佛월드컵 준비 『선수기량 보강하여 함께 출전하자』 ―이제 프랑스월드컵 얘기로 돌아와 최종예선을 앞둔 양국 대표팀의 준비상황과 중동세의 급부상에 대한 대비책에 관해 말씀해 주십시오. ▼차감독〓『저는 지난 3개월동안 팀이 젊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올림픽 대표팀 출신들을 주축으로 팀을 변화시켰습니다. 1차예선 1차리그는 모험이었지만 무사히 치렀고 가능성있는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한국팀은 앞으로 조련만 잘 한다면 기대에 부응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포지션의 전문화가 시급합니다. 한국은 골 결정력과 수비력이 유럽에 비해 떨어져 포지션별 전문화를 통해 기동력을 살리는 축구를 해야 합니다. 이번 한일 친선 경기와 같은 양국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을 이룬다면 극동이 주도적으로 아시아축구를 이끌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가모 감독〓『1차 예선을 치른 일본팀의 상황도 나쁘지는 않지만 선수들의 나이가 많다는 것이 다소 걱정스럽습니다. 그래서 디펜스 미드필드 포워드 등 각 라인별로 1명씩은 젊은 선수들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본대표팀을 사상 최초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시키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가능하다면 2002년 월드컵의 공동개최국인 한국과 함께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아시안컵 대회에서 일본은 최소한 4강 진출을 노렸지만 아쉽게 실패했습니다. 중동 축구가 발전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개인기량이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극동축구가 중동에 떨어진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축구는 열리는 장소가 중요한데 지난해 아시안컵이 중동에서 열렸기 때문에 중동 축구가 다소 유리했습니다. 어쨌든 장소의 불리함을 극복하는 것도 저희가 해결해야할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 한일 축구교류,경기력 향상 크게 기여할것 ―6년만에 한일국가대표팀 경기가 오는 21일 도쿄에서 열립니다. 이번 경기의 의미와 준비상황에 대해 양국 감독님들이 말씀해주십시오. ▼차범근감독〓『한일대표경기가 재개된 것을 크게 환영합니다. 그동안 양국은 친선경기 등을 통해 축구발전을 이뤄왔고 이번 경기는 양국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승리도 중요하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양국이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국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가모감독〓『잠깐 중단됐나 싶었는데 벌써 6년이 흘렀습니다.오랜만에 열리는만큼 좋은 경기를 펼쳐 아시아축구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단 한차례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3년 J리그 출범이후 축구 수준이 많이 향상됐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본선 진출의 꿈이 이뤄질 날이 멀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한일 대표팀 경기가 정기전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한일 축구교류에 관해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있으신지…. ▼정회장〓『축구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잘 되려면 개방을 해야합니다. 즉 교류를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축구교류는 학생 클럽팀 대표팀 등 여러 교류가 있지만 특히 한일대표팀 경기는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나가누마 회장〓『이번 한일 대표팀 경기를 월드컵 공동개최 기념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정기전이라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국과 일본이 프랑스 월드컵 본선에 나간다면 내년에 정기전 시기를 잡는 것이 힘들고 중국도 함께 정기전을 갖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좀더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이부분에서 양측회장의 의견이 엇갈렸다. 정회장은 이번 대표팀 경기가 정기전 부활이 아닌 일회성 경기라면 홈앤드어웨이방식에 따라 한국에서도 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나가누마회장은 일정과 예산의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고 결국 이 논쟁은 좌담회가 끝난 뒤 비공개 단독 회담으로까지 이어졌다. 양측 회장은 이 자리에서 일본대표팀이 오는 9월17일 한국을 방문해 2차전을 갖기로 합의했다. ■ 월드컵대회 운영,개최 후보도시 양국 10개씩 선정 ―2002년 월드컵대회의 엠블럼과 마스코트의 제작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나가누마 회장〓『엠블럼은 하나가 좋고 마스코트는 두개가 좋겠다는 말을 한 것은 FIFA였고 정회장은 두가지 모두 하나였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일 3자간회의에서 해결되겠지만 엠블럼은 분명히 하나가 좋겠습니다』 ▼정회장〓『저는 지난해 FIFA에 이 문제를 한일 양국에 일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엠블럼은 하나가 좋다는데 동의하시니까 마스코트 얘기인데 상업성과 공동개최의 정신을 모두 살리자는 취지에서 양국이 각각 마스코트를 만들고 또 공동으로 하나 더 만드는 절충안을 제안합니다』 ―일본은 지난해 12월25일 10개 월드컵 후보도시를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언제, 어떤 기준으로, 몇 개 도시를 선정할 것입니까. ▼정회장〓『한국은 올 하반기에 FIFA조사단이 다녀간 이후 심사에 합격한 도시중에서 개최도시를 확정할 예정입니다. 일본이 10개 후보도시를 선정했으니 우리도 10개가 적당하겠지요. 이는 조직위내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후보도시 평가위원회에서 할 일입니다』 ―일본 조직위는 언제 결성될 것이며 위원장은 누가 될 것인지, 일본축구협회와 조직위간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할 계획입니까. ▼나가누마 회장〓『올 가을이나 연내에 구성될 겁니다.조직위 내에는 정계 관계 언론계 인사들이 포함된 실행위원회를 두겠지만 중심적 역할은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맡게 될 것입니다. 먼저 구성된 한국 조직위가 일본에 좋은 선례가 되겠지요』 ■ 만찬회 이모저모 이날 좌담회에 이어 열린 만찬회는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국이면서도 그동안 이해관계나 감정대립으로 소원하기만 했던 양측의 앙금을 말끔히 씻어내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평가. 나가누마회장은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한일 두나라 사이가 좋아진다면 정몽준회장이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추천하겠다』고 말했고 정회장은 『나가누마회장이야말로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화답. 정회장은 또 『지난 3년여동안 나이 어린 제가 여러가지 결례를 해 이 자리를 빌려 죄송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 그러자 나가누마회장도 『스포츠에서는 강한 상대를 만나야 긴장도 되고 나중에 그 상대가 좋아지는데 정회장이 바로 그런 상대』라고 치하. 그는 이어 『정회장에게는 든든한 방패가 있는데 그분이 바로 정회장의 부인』이라고 부연하기도. 만찬후 이어진 2차연회에서 정회장은 일본측 일행에 술잔을 권했으며 특히 가모 슈 감독은 주위에서 건네주는 「폭탄주」를 한번도 사양하지 않고 신속히 비워 평소의 주량을 가늠케 하기도. 나가누마회장은 『정회장과 여러차례 만났으나 이처럼 화기애애하게 술자리를 같이 한 것은 처음』이라며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세시간이 넘는 진지한 좌담회에 이어 이런 자리까지 마련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평가. 정회장과 나가누마회장은 2차연회도중 술과 음료를 들고 서로 팔을 낀채 건배하는 등 전에 볼수 없었던 친근함을 과시. 〈동아일보 이재권 기자〉 <<참석자>> ▼ 정몽준 회장 학군단(ROTC) 출신인 정몽준회장(46)은 지난 75년부터 2년간 경리장교로 군복무를 할 당시 「축구광」이 됐다.미국 MIT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 존스 홉킨스대에서 국제정치학박사학위를 각각 받고 귀국한뒤 현대중공업 회장으로 있으면서도 그는 직장내 조기축구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m80,75㎏의 건장한 체격을 지닌 정회장의 포지션은 전방공격수. 몸싸움에 밀리지 않을뿐 아니라 슈팅이 강해 「동네축구」에서는 수준급의 골잡이로 활약한다.축구에 대한 이같은 애정때문인지 그는 93년 대한축구협회장직을 맡았다. 94년초 FIFA부회장에 선출됐으며 2002년 월드컵유치경쟁을 벌일 때도 세계를 누비며 지칠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했다. 그는 한국 최대기업인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6남. 중앙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엘리트 재벌2세이지만 소탈하고 부담없는 성격의 소유자다. 대한축구협회장(재선) 국회의원(3선) 현대중공업 고문, 2남2녀의 아버지 등 「1인4역」을 해내고 있다. ▼ 차범근 감독 「연습벌레」. 「달밤에 체조하는 사나이」. 이는 한국축구대표팀 차범근감독(44)이 72년부터 4년동안 활약했던 고려대 축구선수시절 붙여진 별명이다. 서울 경신고 3년때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그는 승승장구,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26세때인 지난 78년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즐비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이후 10년동안 프랑크푸르트와 레베쿠젠 등 명문팀들을 거치며 「차붐」, 「갈색폭격기」라는 닉네임과 함께 세계적인 축구스타로 이름을 떨쳤다. 그는 독일에 있는 동안 모두 3백8경기에 출장해 98골을 기록, 외국 용병 가운데 득점 1위를 기록할 만큼 독보적인 존재였다. 지난 89년 귀국한 차감독은 이듬해 현대프로축구팀 감독으로 취임, 4년간 프로팀 지도자생활을 했다. 그의 지도방식은 독특하다. 선수들과 똑같이 공을 차면서 지도하고 컴퓨터로 기록을 일일이 체크한다. 고교2년생인 아들 두리(17)도 축구선수다. ▼ 나가누마 겐 회장 일본축구계의 가장 빛나는 성과는 지난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따낸 동메달이다. 당시 감독으로서 일본 올림픽대표팀을 이끈 명장이 나가누마(67)였다. 그는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이 열린 1930년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부속중(현 히로시마부속고)과 간가쿠대, 주오대를 거쳐 후루가와전공(현 이치하라)팀에서 공격수로 활약한 그는 일본대표로서 56년 멜버른올림픽에 출전했다. 국가대표팀 경기에 네차례 출장, 1득점을 기록했다. 61년에는 후루가와팀의 선수겸 감독으로 사상 처음 국내대회 3관왕(전일본, 실업단, 도시대항)의 위업을 이뤘고 62년에는 32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대표팀 감독에 취임했다. 그는 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을 8강으로 이끌었으며 68년 멕시코올림픽에서 동메달의 「쾌거」를 이뤄냈다. 지난 76년 일본축구협회 전무이사, 87년 부회장에 선임됐고 94년 회장에 취임한 그는 현재 회장 2기째. ▼ 가모 슈 감독 지난 94년 12월 외국인인 팔카오감독의 뒤를 이어 일본 대표팀 사령탑에 오른 가모 슈감독(57). 그는 1년여전 「도하의 비극」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일본축구협회의 「월드컵 감독 일본인 기용 시기상조론」을 뒤엎은 장본인이다. 대표팀 전 감독과 선수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가모감독의 수완과 실적, 승부욕이 높이 평가받은 결과였다. 얀마디젤팀 코치를 거쳐 74년 닛산자동차(현 요코하마 마리노스)팀의 감독으로 부임, 일본인 프로감독 1호를 기록했다. 84년 팀을 전일본선수권 첫 우승으로 이끌었고 88년에는 JSL배, 전일본선수권, 일본리그를 석권, 3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그가 추구하는 플레이는 공격축구. 수비보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승리를 따내는 스타일. 그의 감독취임이후 일본대표팀의 국제대회 A매치 성적은 20승5무12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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