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혈관 약 복용 30대, 5중 추돌… “졸음-어지럼증 유발 약품 주의를”

  • 동아일보

감기-비염치료제-근육이완제 등
마약외 일반 약도 운전중 사고 위험
“복용 약 특성-부작용 인지해야”

23일 늦은 저녁 퇴근길에 오른 30대 남성 김모 씨는 승용차를 몰고 서울 성수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목요일 밤이었다. 그런데 다리 끝에 다다랐을 무렵, 김 씨는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다 순간 의식을 잃었다. 김 씨의 차량은 급가속해 앞차를 그대로 들이받았고, 그 앞에 있던 5대의 차량이 연달아 추돌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 차량의 속도가 줄며 인명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자칫 대형 참사로 번질 뻔했다. 사고 직후 정신을 차린 김 씨는 경찰에 “운전대를 잡기 전 뇌혈관 약을 복용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사고가 뇌혈관 질환의 일시적 재발일 수 있지만, 복용 약물의 부작용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특히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니더라도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구매하는 의약품 중 운전 능력을 저하시키는 성분이 적지 않다고 경고했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운전이 곤란한 상태’에서 운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간 단속은 주로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에 집중돼 있었다. 이에 정부는 내년 4월부터 어지럼증 등을 유발할 수 있는 일반 의약품 복용 운전도 처벌 대상에 포함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감기약, 알레르기약, 근육이완제, 위경련 완화제 등 일상적 질환 치료용 약물은 일일이 단속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 같은 의약품의 일부 성분은 집중력과 판단력, 반사 속도 등에 영향을 줘 운전 중 사고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비염 치료에 사용되는 1세대 항히스타민제는 뇌의 각성 기능을 억제해 졸음과 집중력 저하를 유발한다. 종합감기약에 흔히 포함되는 덱스트로메토르판 역시 과다 복용 시 졸음·환각·어지럼증 등의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근육이완제 성분인 클로르족사존, 위경련 완화제 스코폴라민 등 진경제 계열 약물도 졸음을 유발할 수 있다. 이들 약품은 음주처럼 현장 검사가 불가능하다. 사고 발생 후에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혈액 분석 등을 통해 복용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운전 능력 저하 위험이 있는 의약품에 대해 체계적인 관리와 경고 표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향정신성의약품이 아니더라도 항히스타민제, 근육이완제, 항경련제 등 운전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별도로 분류해 관리한다. 이 가운데 일부는 복용 후 운전을 경고하는 문구를 부착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와 독일은 약물의 운전 주의 정도를 색상과 아이콘으로 4단계로 구분해 약 포장에 표시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소비자가 약의 포장만으로도 운전 영향도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조선대 약학대학 기성환 교수는 “복용 중인 약의 특성과 부작용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며 “약사들도 운전 시 주의가 필요한 약물의 정보를 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약물 운전에 대한 처벌 근거를 명확히 하고, 운전 시 위험 요소가 있는 약물 종류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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