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민족문제연구소는 일본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강제동원됐던 김 할아버지가 전날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18년 12월 22일 황해도 연백군 연안에서 태어난 김 할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면 징용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듣고 연백 전매지국에 취직했다. 그러던 중 1944년 8월 목재 나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전매청 트럭에 올랐다가 다른 청년 200여 명과 함께 끌려갔다. 집에는 연락조차 하지 못했다.
이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거쳐 나가사키 미쓰비시조선소에 도착한 김 할아버지는 군사훈련을 받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노역에 동원됐다.
김 할아버지는 선박에 사용하는 강철파이프를 구부리다가 체인이 끊어져 엄지발가락이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은 뒤 발이 퉁퉁 부은 상태로 계속 일해야 했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김 할아버지는 폭심지에서 약 3.2㎞ 떨어진 공장에서 작업하다가 피폭됐다. 공장 철문에 깔려 목을 다쳤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후 말린 오징어를 판 돈으로 밀항선을 타고 귀국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고인은 2019년 4월 4일 미쓰비시중공업의 책임을 묻는 강제동원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전범 기업의 책임을 묻고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싸워오셨다”고 밝혔다.
김 할아버지는 당시 소송을 제기하기에 앞서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같은 인간으로서 왜 그들 앞에 끌려가 개나 돼지 대우도 못 받는 인간으로 살아야 했나”라고 말했다.
올해 5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1부(부장판사 임은하 김용두 최성수)는 김 할아버지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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