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300억 지원은 불법…노소영 재산 기여로 참작 못해”…SK주식 분할 청구 불인정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2024.4.16 뉴스1
대법원이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64)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63)에게 약 1조3800억1700만 원의 재산분할금을 지급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과거 SK에 유입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불법 뇌물’이기 때문에 여기서 비롯된 SK 지분에도 그 불법성이 사라지지 않으며, 노 관장이 합법적으로 분할을 청구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 법은 불법 자금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노 관장에게 지급될 재산분할액이 재조정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16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 원,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 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일부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날 판결의 쟁점은 재산분할 액수였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300억 비자금’이 유입돼 성장한 SK의 주식을 그 딸인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할 수 있는지, 재산분할을 요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대법원은 “민법 제746조는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며 “민법 제746조는 사법의 기본이념으로서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를 한 사람을 법의 보호영역 외에 두어 스스로 한 급부의 복구를 어떠한 형식으로도 소구할 수 없다는 법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불법적인 재산, 자금에 대한 권리를 우리 법이 보호해 줄 수는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피고(노 관장)의 부친 노태우가 1991년경 원고(최 회장)의 부친 최종현에게 300억 원 정도의 금전을 지원하였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노태우가 뇌물의 일부로서 거액의 돈을 사돈 혹은 자녀 부부에게 지원하고 이에 관하여 함구함으로써 이에 관한 국가의 자금 추적과 추징을 불가능하게 한 행위는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에 반하고 반사회성, 반윤리성, 반도덕성이 현저하여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비자금에 대한 불법성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대법원은 “피고가 노태우가 지원한 돈의 반환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산분할에서의 피고의 기여로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불법성이 절연될 수 없다”고 봤다. 노 관장이 ‘300억 원 비자금’ 자체의 분할을 청구하는 게 아니라 그에서 비롯된 SK 주식의 분할을 청구하는 것이지만, 여전히 비자금에서 시작된 불법성을 사라지지 않았단 뜻이다.
대법원은 “결국 노태우의 행위가 법적 보호가치가 없는 이상 이를 재산분할에서 피고의 기여 내용으로 참작하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비자금의 불법성이 현재의 재산까지 이어진 이상, 앞선 민법 제746조의 취지에 따라 노 관장이 분할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또 ‘혼인관계가 파탄된 이후 한쪽이 부부 공동재산의 형성 유지와 관련된 재산을 처분했다면 사실심(1, 2심) 변론종결일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 이에 따라 항소심과 달리 최 회장이 2018년 친인척에게 증여한 재산(약 9220억 원) 등을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봤다.
최 회장이 친인척에게 주식을 증여하고 본인의 급여를 반납한 것은 그가 그룹 경영권을 원만히 확보하기 위한 것이거나 원활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궁극적으로는 원·피고 부부공동재산의 형성 유지와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있으므로 최 회장이 이미 증여 등으로 처분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이나 돈을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했다. 노 관장이 재산분할 요구 맞소송을 제기한 2019년 2월에는 최 회장이 이미 해당 재산을 처분한 상태였다.
이는 최 회장이 2017년 7월 이혼 조정을 신청한 지 8년 3개월 만이자, 지난해 5월 항소심 선고 이후 1년 5개월 만에 나온 대법원 판단이다.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1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재산분할이 걸린 문제로 ‘세기의 이혼 소송’으로 불렸다.
앞서 1심에서 노 관장은 위자료 3억 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의 50%와 계열사 주식 등에 대한 재산 분할을 요구했다. 이에 재판부는, 최 회장이 부친인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증여·상속받은 SK 주식은 부부가 공동으로 모은 재산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SK그룹의 다른 계열사들 주식 형성 기여만 일부 인정해 재산분할금을 665억 원, 위자료는 1억 원으로 산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항소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약 300억 원이 최종현 SK 선대 회장 등에게 전달돼 증권사 인수와 SK 주식 매입 등에 사용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두 사람의 공동재산을 약 4조115억 원으로 보고 노 관장의 재산분할금을 그 35%(1조3808억1700만 원)로 인정했다. 위자료는 20억 원으로 산정했다.
최종적으로 이날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300억 원 금전 지원은 재산분할에 있어 노 관장의 기여로 참작할 수 없다”며 “최 회장이 부부공동재산 형성·유지와 관련해 제3자에게 증여하는 등으로 처분한 재산은 분할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SK 측 변호를 맡은 이재근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 항소심의 법리 오해나 사실 오인 등 잘못을 시정할 수 있어 매우 다행”이라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