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서울 종로구 청량리종합시장에서 한 상인이 민생회복 소비쿠폰으로 결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번아웃 증후군 때문에 5월 퇴사했다. 6월부터 직장가입자가 아닌 지역가입자에 편입돼 국민건강보험료가 올랐다. 백수가 되면서 상위 10%에 들어간 아이러니한 상황이다.”(30대 A 씨)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 1인 가구가 됐다. 가진 재산이라곤 아버지가 빚과 함께 남긴 공시지가 300만 원짜리 땅과 10년 전 3000만 원 주고 산 차가 전부인데, 월급이 많다는 이유로 소비쿠폰을 받지 못했다.”(50대 B 씨)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시민들이 기자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한 말이다. 모든 국민이 대상이던 1차와 달리 2차 소비쿠폰은 고액자산가와 소득 상위 10%에겐 지급되지 않는다. ‘소비 진작’에 더해 ‘소득 지원’이라는 정책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26억짜리 집 있어도 쿠폰 지급 대상 가구원의 2024년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액이 12억 원을 초과하거나 같은 해 귀속 금융소득 합계액이 2000만 원을 넘으면 고액자산가 가구로 판단된다. 고액자산가 가구는 가구원 모두가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1가구 1주택자 기준으로 재산세 과세표준 12억 원에 해당하는 주택은 공시가가 약 26억7000만 원이다.
소득은 6월 국민건강보험료(장기요양보험료 제외)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1인 가구 기준 국민건강보험료가 22만 원 이상이면 ‘소득 상위 10%’에 포함된다. 연봉이 7500만 원 이상인 직장가입자는 2차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2차 소비쿠폰을 받지 못한 시민들은 지급 기준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3년 차 직장인 A 씨는 “연봉 4000만 원을 받으며 직장을 다닐 때는 국민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소득 상위 10%에 들지 않았는데, 퇴사 후 백수가 된 지금 상위 10%에 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며 “월급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쿠폰까지 받지 못해 아쉽고, 다음에는 더 좋은 기준으로 정책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장가입자의 국민건강보험료는 소득만을 근거로 산정되는 반면, 지역가입자는 소득과 재산을 바탕으로 보험료가 결정된다. 이 때문에 A 씨처럼 퇴사 후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격이 바뀌면서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대상이 아님을 알리는 안내문. 독자 제공선별 지급하면 경제적·정치적 비용 발생 재산은 없지만 월급이 많아 2차 소비쿠폰을 받지 못한 1인 가구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24년 차 직장인 B 씨는 6월에 낸 국민건강보험료가 22만 원을 넘어 2차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B 씨는 “당연히 소비쿠폰을 받을 줄 알고 신청했는데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해 황당했다”며 “주변 사람들도 ‘네가 상위 10%라니 숨겨둔 재산이 있는 거 아니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이어 B 씨는 “아파트도 있고 월급도 많은데 지급 기준을 교묘하게 충족해 소비쿠폰을 받은 주변 사람들을 보면 내가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생각에 상대적 박탈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복지정책을 설계할 때 경제적 효용뿐 아니라 정치적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주성 이화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소비쿠폰을 더 주면 재분배 효과는 커지지만, 지급 대상을 선별하는 데 드는 경제적 비용과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이 느끼는 불만 같은 정치적 비용이 발생한다”며 “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만이 정책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한 번 지급하고 마는 소비쿠폰의 경우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이 정책 효율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10월 31일까지 주민센터를 직접 방문하거나 온라인 국민신문고에 접속해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최근 실직·폐업 등으로 소득이나 재산이 줄어든 사람은 이의신청 처리 과정에서 이를 반영해 2차 지급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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