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대행의 퇴임사는 대행으로 겪은 일이 많은 것치고는 들을 만한 것이 없었다. 다만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란 말이 귀에 남는다.
그는 “흔히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는 대통령과 국회 사이에 교착 상태가 생길 경우 이를 해소할 장치가 없다고들 한다”면서 “그러나 헌법의 설계에 따르면 헌재가 권한쟁의 같은 절차에서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을 하고 헌법기관이 이를 존중함으로써 교착 상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쓴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란 말은 일상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
이 말은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라고 하면 오히려 쉽게 이해된다. 반대로 타당성을 빼고 ‘사실성을 갖춘 결정’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는 말이 된다. 헌재의 결정은 이미 그 자체로 사실성(사실적인 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사실성을 갖춘 결정’이란 표현은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헌재가 결정했기 때문에 따른다’가 아니라 ‘헌재의 결정이 타당하기 때문에 따른다’는 상황이 돼야 헌재의 결정은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의 승복을 얻을 수 있다. 강조돼야 할 것은 타당성이다. 그래서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라고 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법률가들은 실정성과 정당성이란 말을 대조적으로 쓰기는 하지만 ‘사실성과 타당성’이란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사실적인 것의 규범적인 힘(die normative Kraft des Faktischen)’이란 말은 한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관습은 사실적인 것일 뿐이지만 규범적인 힘까지 갖고 있다. 특히 전근대사회에서 그랬다. 그러나 사실성과 타당성(Faktizitat und Geltung)이라고 할 때 사실성은 관습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근대 국가가 형성된 후 국가가 강제하는 사실적인 제재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헌재의 결정이 타당성이 있건 없건 간에 가지는 사실적인 힘을 말한다.
●사실성과 타당성은 하버마스의 표현
‘사실성과 타당성’은 독일 사회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1992년 쓴 책의 제목이다. 나는 하버마스의 걸작으로 두 책을 꼽고 싶은데 그 하나는 대학원 시절에 읽었던 ‘의사소통 행위 이론’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사실성과 타당성’이다. 하버마스가 의사소통 행위 이론을 바탕으로 사실학(정치학)과 규범학(법학)의 결합을 시도한 책이 ‘사실성과 타당성’이다.
문 대행이 하버마스의 책을 직접 읽고 ‘사실성과 타당성’을 언급한 것인지 아니면 하버마스의 말을 인용한 국내의 문헌을 읽고 언급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헌법재판관이 하버마스의 이 책을 직접 읽었다면 그것만큼 바람직한 일은 없다. 나는 모든 헌법재판관들이 이 책을 정독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다만 문 대행이 이 책을 읽었음에도 ‘사실성과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면 제대로 읽었다고 보기 어렵다. 하버마스의 논의는 사실성과 타당성의 병존이 아니라 둘 사이의 긴장에서 시작해 둘 사이의 긴장으로 끝난다. 전(前) 근대사회에서는 관습과 같은 사실적인 것의 규범적인 힘이 작동했으나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더 이상 규범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됐다. 근대사회에서는 관습 대신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결정이 사실적인 힘을 갖고 있다. 다만 국회의 입법이든, 행정부의 처분이든 공권력에 의한 결정은 일단 사실적인 힘을 갖긴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정당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전 근대사회의 관습이 일단 의문시된 후 이성적 개인들의 합의로 인정될 때 규범적인 힘을 갖게 되듯이 근대사회에서 공권력에 의한 결정도 이성적 개인들에 의해 그 타당성이 인정될 때 사실적인 힘을 넘어선 규범적인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헌재의 결정이 타당성을 인정받으려면 여러 조건을 만족시켜야 하지만 일단 내적으로 정합적이어야 한다. 정합적이라고 무조건 타당한 것은 아니지만 타당하려면 일단 정합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정합적이지 않는데도 숫자로 밀어붙인 결정은 ‘사실성을 갖춘 결정’이긴 하지만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 아니다.
●헌재는 타당성 있는 결정을 한 것인지 의문
문 대행이 이끈 헌재는 총리가 맡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소추 정족수가 대통령의 탄핵소추 정족수인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아니라 총리의 탄핵소추 정족수인 국회 과반이라고 결정했다. 헌법에는 권한대행의 탄핵 정족수에 대한 언급이 없다. 헌재가 새로운 정족수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니 대통령의 탄핵소추 정족수나 총리의 탄핵소추 정족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본래 신분이 총리이므로 총리 탄핵소추 정족수를 적용할 수도 있고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있으니 대통령 탄핵소추 정족수를 적용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적용을 했을 때 체계적인 결함이 없어야 한다.
어느 부처에서 차관이 장관 권한대행을 맡게 됐다고 해보자. 차관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차관에 해당하는 탄핵정족수 자체가 없다. 헌재의 결정처럼 권한대행에게는 본래 신분에 해당하는 정족수를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면 차관이 맡은 장관 권한대행은 탄핵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장관은 탄핵할 수 있어도 장관 권한대행은 탄핵할 수 없다는 이상한결론이 나온다. 반면 대통령 권한대행에게는 대통령 정족수, 장관 권한대행에게는 장관 정족수를 적용하면 이상한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헌재의 결정은 탄핵 체계 전체에서 봤을 때 정합성을 갖추지 못했고 따라서 타당성을 갖춘 결정이라고 할 수 없고 단지 6대 2의 숫자로 밀어붙인 사실적인 결정이었을 뿐이다.
하버마스는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헌법재판소가 존재해야만 하는지는 자명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 이유로 헌법재판 제도가 결여된 법치국가적 질서도 다수 있고 독일과 미국처럼 그런 제도가 있는 곳에서도 그것의 위상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는 헌법재판 제도를 인정할 때 헌재의 고유한 영역으로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심판 권한쟁의심판 등 세 영역을 들었다(탄핵심판은 들지 않았다). 그 중에서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은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위헌법률심판과 헌법소원심판은 법률이 아니라 헌법의 기본권을 토대로 심사하기 때문에 헌재의 고유한 영역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헌재가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 사법국가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다만 권한쟁의 심판에서 헌재의 결정은 의회나 정부가 거부해도 그 결정을 강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권력 분립의 논리가 헌재의 결정에 의해 침해되지는 않는다는 게 그의 견해다.
한덕수 탄핵심판에는 대통령의 국회선출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한 권한쟁의적인 성격의 결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헌법은 헌법재판관 9명 모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권을 서술한 뒤 그 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한 자를 ,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를 임명하도록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국회가 선출한 자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에 대한 기계적 임명을 읽어내기는 힘들다. 그보다는 국회가 선출한 자나 대법원장이 지명한 자 중에서 임명해야 하기는 하지만 다시 선출하거나 다시 지명하도록 임명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헌재는 기계적 임명을 밀어붙였다.
헌재의 결정대로 헌법재판관 임명거부가 정말 위헌이라면 이만큼 중대한 위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헌재는 한 권한대행의 임명거부에도 불구하고 탄핵할 중대한 사유는 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런 결정은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많지만 하버마스에 따르면 특히 권한쟁의적인 부분, 즉 임명거부를 둘러싼 부분에 대해서는 따르지 않아도 그만인 결정이다. 헌재가 결정했다고 해서 이런 부분까지 따르면 하버마스가 우려한 사법국가(司法國家)화가 초래될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권한에 대해서는 국회도 정부도 다 근거를 들어 논증을 펼칠 수 있고 헌재라고 해서 자기 결정을 강제할 수단이 없으며 따라서 국회 정부 헌재의 3자가 합의될 때까지 각자 타당성 주장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권력분립의 원칙에 합치한다. 대통령이 탄핵되긴 했지만 국회와 정부 간의 권력분립이 탄핵된 건 아니다. 정부가 국회와 헌재에 너무 쉽게 굴복함으로써 권력분립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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