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투입된 시골 공보의 “저 없으니 약 못 타가시던데…걱정되네요”

  • 뉴시스
  • 입력 2024년 3월 21일 10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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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 파견 온 전남 지역 공보의 20대
보건지소서 유일하게 일반의과 맡다 파견
"훈련소 교육 갔을 때 약 못 탄 환자 있어"
"이번에도 비슷한 일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
"병원 수련 경험 없어…제 역할 쉽지 않아"

ⓒ뉴시스
“최전선인 의료 취약지에서 일차 의료를 담당하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입니다.”

지방의 한 보건지소에서 진료해 온 김모(29)씨는 전국 20개 병원으로 1차 파견된 공보의 134명 중 한 명이다. 흔히 공보의라고 줄여부르는 공중보건의사는 병역법 규정에 의해 군 복무 대신 의사가 없는 낙도 등 의료취약지나 보건소에서 3년 간 근무하는 이들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에 대한 반발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비상체계 중 하나로 김씨와 같은 공보의나 군의관들을 병원 진료 현장에 투입하기로 했고, 그렇게 김씨는 4시간(330㎞)을 달려 서울 주요 상급종합병원 ‘빅5’ 중 한 곳에서 4주를 보내게 됐다.

“(일하던 보건지소 지역) 버스가 한 대 뿐이에요. 이마저도 배차 간격이 굉장히 길어 헛걸음하시고 치료를 포기하는 분들이 있을까 매우 걱정됩니다.”

김씨는 빅5 병원에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는 와중에도 보건지소 걱정을 놓지 않는다.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왔지만, 파견으로 인해 자신이 있던 곳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보건지소에서 김씨는 일반 진료·예방접종·경로당 출장 진료 등 일반의과를 담당한 유일한 공보의였다.

‘일당백’ 김씨가 빠지자 자연스레 보건지소 진료 체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21일 지역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해당 보건지소에서는 주 5일 중 이틀만 일반 진료를 본다. 이마저도 30㎞ 떨어진 이웃 보건지소 공보의가 순회 진료를 와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특히 김씨가 공보의로 있는 지역은 국내 대표적인 의료취약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의료접근성이 떨어져 공보의에 대한 의존도가 더 크다는 의미다.

그는 “이 지역은 시골 중의 시골”이라며 “건강 정보를 접하기 어려워 주민들이 병에 대해 궁금한 점을 나에게 묻는다”고 했다.

김씨는 “실제로 훈련소에서 교육을 받느라 보건지소를 비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약을 타지 못해 내가 복귀한 후 다시 찾아오신 분도 있었다”며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김씨의 보건지소 환자는 대부분 노년층이라고 한다. 그는 “대부분 전자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혈압, 당뇨, 관절염에 신음하는 어르신들”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견 직전까지도 숙박비 관련 지침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서울에 연고가 없는 공보의는 숙박과 관련해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고 전했다.
그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면허를 취득하고 병원에서 1년 간 인턴의, 3~4년 간 전공의 수련을 한 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병원에서 수련 경험이 없다면 들어가서 바로 업무에 투입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저의 경우에도 병원에서 수련 경험이 없는 일반의이다보니 정부에서 전공의 일을 하라고 파견을 보냈지만 제 역할을 다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군의관·공보의 파견 발표 당시 지역의료 공백 상황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도서지역, 응급의료기관 등 현재도 아주 긴급한 수요가 있는 지역에서의 또는 기관에서의 차출은 가급적이면 배제하는 쪽으로 하고 있다”며 “일부 진료에 불편을 겪으실 수는 있지만 그 부분은 지역 순환근무 등을 통해 메꿔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김씨는 근본적으로 공보의 차출이 지역의료 공백을 심화하는 악순환을 지속시킨다고 했다. 김씨는 “(겨우) 130여명을 파견했는데 지역 의료 공백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해결되려면 현재의 의료공백 사태가 끝나는 수 밖에 없지만, 전날 2025학년도 의대 증원 2000명의 학교별 배분 규모까지 발표되고 정부와 의료계 모두 요지부동인 마당에 합의는 요원해 보이기만 하다.

김씨는 지역의료 붕괴 원인으로 공보의 수 감소를 꼽기도 했다.

공보의가 줄어드는 배경에 대해 김씨는 “37개월이라는 긴 복무 시간과 점점 올라가는 업무 강도 때문에 현역병 입대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했다.

“처우를 개선해 의과 공보의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김씨는 이를 통해 지역 의료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부는 다음 주 공보의·군의관 250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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