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을 잃은 뒤, 비로소 내 인생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30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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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연명의료 거부한 시각장애인들의 자서전 출판기
사고-질병 혹은 선천적인 이유로 앞 못 보는 장애 안고 살아왔지만
삶의 기록엔 어둠보다 희망 넘쳐… 참여 21명 모두 연명의료 거부 서명
“무의미한 치료 대신 존엄한 죽음을 내 시신 연구에 사용되길 바라는 맘”

22일 서울 성북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실에서 시각장애인 21명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구술자서전 ‘마음의 눈으로 돌아본 내
 인생’의 전달식이 열렸다. 주인공인 박언춘 배귀엽 박순자 나종천 신양수 씨(앞줄 왼쪽부터)와 구술작가 홍양희 전효선 안덕희 
조정숙 강유정 김현경 윤서희 씨(뒷줄 왼쪽부터)가 이 책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22일 서울 성북구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사무실에서 시각장애인 21명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구술자서전 ‘마음의 눈으로 돌아본 내 인생’의 전달식이 열렸다. 주인공인 박언춘 배귀엽 박순자 나종천 신양수 씨(앞줄 왼쪽부터)와 구술작가 홍양희 전효선 안덕희 조정숙 강유정 김현경 윤서희 씨(뒷줄 왼쪽부터)가 이 책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시각장애인 21명의 구술 자서전을 엮은 ‘마음의 눈으로 돌아본 내 인생’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음성도서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만들어 기부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시각장애인 21명의 구술 자서전을 엮은 ‘마음의 눈으로 돌아본 내 인생’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 유튜브 채널로 연결됩니다. 음성도서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만들어 기부했습니다.
《영하 10도의 칼바람이 불었던 22일 오후 2시. 서울 성북구 보문동 ‘사전의료의향서 실천모임’(사실모)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난로 위 주전자가 뿜어낸 김이 나종천 씨(70)의 선글라스에 하얗게 서렸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먼저 와 있던 박언춘 씨(63)가 종천 씨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형님, 접니다.” “누구?” “언춘이에요.” 종천 씨가 손을 맞잡았다. “언춘이가 왔구나!”

이날 행사는 종천 씨를 포함한 노인 21명의 자서전을 엮은 책을 주인공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열렸다. 노인 참석자는 5명. 구면과 초면이 섞였다. 책에 참여한 구술작가 6명이 동석했다. 자리가 정리되자 이들 앞에 ‘마음의 눈으로 돌아본 내 인생’이라는 제목이 양각된 책이 한 권씩 놓였다. “이게 저희가 쓴 책인가요?” 박순자 씨(68)가 책을 손으로 더듬으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허공을 향한 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웃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향서) 공식 상담기관인 사실모는 2019년부터 해마다 연명의료 거부의 뜻을 밝힌 어르신들의 삶을 구술작가가 듣고 옮기는 자서전을 만들어왔다. 올해로 다섯 번째다. 그런데 이번 주인공들은 더 특별했다. 자서전에 참여한 21명 모두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빛을 잃은 빈자리에 들어선 것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이 닥쳤을 때 ‘눈앞이 캄캄하다’고 한다. 그 일을 실제로 겪은 이들의 일대기라면 책이 온통 고통과 불운으로 가득하지 않을까. 몇 쪽 넘기지 않아 기우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자서전에 참여한 21명은 ‘괜히 살았다’고 후회하기는커녕 하나같이 “지금이 행복하다”고 적었기 때문이다.

배귀엽 씨(76)는 이날 행사 내내 눈물을 훔쳤다. 그는 젊은 시절 여러 번 유산했다. 시댁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라는 소리를 듣고 매질을 당했다. 다신 깨어나지 않을 생각으로 입에 털어 넣은 약이 시력마저 앗아갔다. 그 후로도 살얼음 앉은 냇가에서 손을 호호 불며 빨래하고, 얼굴이 새카매지도록 젖은 땔감으로 불을 땠다. 어두운 눈으로 겪은 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다. 귀엽 씨는 “그 시절을 어떻게 잊겠냐”고 했다.

하지만 예순셋의 나이에 맹학교에 입학해 안마사 자격증을 따면서 새 삶이 시작됐다. 다발성 척수염과 파킨슨병 등 희귀질환자가 주된 고객이었다. 고통으로 힘들어했던 환자들은 정성을 담은 안마를 통해 잠시나마 편해졌고, 귀엽 씨는 비로소 삶의 보람을 찾았다. 그는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된다니 스스로 대견하다”며 “마치 할머니 품에서 마냥 귀염둥이로 자라던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처럼 하루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했다.

권택환 씨(72)는 “시각장애를 얻고부터가 ‘인생의 절정기’였다”고 한다. 그는 젊은 날 술에 빠져 사느라 집에 월급봉투를 가져간 적이 없다. 아내가 인형 눈을 붙이며 두 아이를 키웠다. 마흔여덟에 알 수 없는 병으로 두 눈을 잃은 뒤에야 아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아내가 “당신의 눈이 되고 팔다리가 되어 주겠다”며 용기를 준 것. 택환 씨는 아내의 응원 덕분에 재활 훈련을 시작했고, 2019년 시각장애인 최초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완등했다. 택환 씨는 “길이 끊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길이 있었다”고 적었다.

책에는 험난한 시절을 맨손으로 더듬으며 한 뼘씩 걸어온 사람만이 벼려낼 수 있는 명문장이 가득했다. 김경숙 씨(73)는 “두 눈을 가져간 신은 내게 천 개의 귀를 달아주었다”고 한다. 부모 없이 자라 서른 즈음 남편을 잃고 마흔 넘어 시력까지 잃었지만, 장성한 자녀들이 건강하고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돌봄 서비스를 받는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는 얘기다.

“가족은 나의 빛”


어떤 글은 ‘장애가 있어도 가족은 가족’이라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순자 씨는 성인이 되고도 키가 132cm로 작아 10년 넘게 은둔 생활을 했다. 하지만 하나뿐인 아들이 생긴 뒤로는 악착같이 살아냈다. 지하 연탄창고를 개조한 단칸방에서 빗물로 아이 머리를 감기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그런 아들은 눈이 점점 어두워지는 순자 씨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빛이 됐다. 30년 전, 당시 네 살 아들이 제 엄마를 무시하는 동네 형들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쏘아붙이고 씩씩하게 순자 씨의 손을 잡아준 일은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다. 순자 씨는 “우리 아들은 담배꽁초 줍는 일로 연명하는 ‘난쟁이’ 엄마를 한 번도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도 부럽지 않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봐줬다”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순자 씨는 이날 행사에서도 수줍게 웃으며 구술작가에게 부탁했다. “책 사진 좀 찍어주세요. 우리 아들에게 보내려고요.”

육성수 씨(68)는 빛을 잃고 반년 넘게 신발을 신지 않았다. 외출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런 그가 시간이 흘러 ‘눈보다 가치 있는 것을 얻었다’며 마음을 고친 건 큰아들 덕이었다. 큰아들이 입사 지원서에 “나는 어떤 과정도 다 이겨낼 수 있다. 실명한 아버지가 어떻게 시련을 극복해 왔는지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라고 쓴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성수 씨는 “사람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이라는데, 나는 나머지 백 냥이 더 소중하다”고 적었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나는 달콤한 연애담도 있다. 언춘 씨는 아내 고현숙 씨(60)를 스물한 살에 처음 만났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현숙 씨가 봉사차 언춘 씨가 다니는 맹학교에 방문하면서였다. 자주 만나며 조금씩 가까워지면서도 선뜻 마음을 열지 못했던 현숙 씨가 언춘 씨를 남다르게 느끼게 된 계기는 해수욕장 나들이였다. 현숙 씨의 발에 박힌 유리 조각을 언춘 씨가 입으로 빼낸 것. 현숙 씨는 “그 순간에 ‘세상에 이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회고했다. 처음엔 교제에 반대했던 가족도 사랑으로 설득해 낸 두 연인은 올해로 결혼 36주년을 맞았다.

남궁광수 씨는 실명 후에 찾아온 아내와의 인연에 대해 적었다. 당시 항암 치료 중이던 아내는 광수 씨를 만나며 용기를 얻었고, 먼저 청혼했다. 광수 씨는 짝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사양했지만, 아내의 줄기찬 설득에 마음을 열었다. 둘은 2016년 성탄절 한 교회에서 소박한 결혼 예배를 올렸다. 광수 씨는 “두 눈을 잃고 세상을 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지만, 나를 믿고 이해해 주는 아내를 만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죽음 마중하자 인생이 더 깊어져”


책의 또 하나의 특징은 오랜 날을 살아온 노인들이 사전의향서 등으로 죽음을 마주하면서 남긴 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주인공 중 한 명인 안인랑 씨는 이번 자서전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가 됐다. 구술 작업이 한창이던 2021년 8월에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별세했기 때문이다. 인랑 씨가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었던 사실을 가족이 알게 된 건 상을 치르고 열흘 정도 지났을 무렵, 유품을 정리하면서였다.

인랑 씨의 아들은 구술작가 김명실 씨로부터 아버지의 자서전 초고를 건네받았다. 떨리는 손으로 받아 든 원고 안에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빌린 양복을 입고 맞선에서 아내를 만난 일, 무일푼으로 노동을 하다가 사기를 당한 후 눈을 잃은 사연 등이 적혀 있었다. 무엇보다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가득했다. 평생 몰랐던 아버지 속마음을 뒤늦게 안 아들은 오열했다. 아들은 “한 줄 한 줄이 아버님의 목소리가 되어 제 귀에 들어왔다”라며 “아버지가 왜 그토록 절약이 몸에 밴 삶을 사시며 자식들에게 엄격하셨는지 이해가 됐다”고 했다.

주인공들이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다양했다. 김경희 씨(74)는 마흔한 살에 남편을 떠나보낸 뒤 연명의료의 무익함을 느꼈다고 한다. 마지막 한 달을 중환자실에 누운 채 가족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희 씨는 스스로 사전의향서를 작성하고 주변에도 권유하고 있다. 박양하 씨는 2014년 서울의 한 병원에 방문해 시신 기증 서약서를 썼다. 양하 씨는 “이 한 몸 죽은 뒤에 연구에 잘 사용되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이라고 했다.

다른 장애인들과의 동행


많은 주인공들은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사회와 동료 장애인들로부터 얻은 도움에 대한 깊은 감사를 글에 담았다. 더 나아가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에게 베풀기 위해 여생을 사는 이들도 많았다. 종천 씨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고, 시력을 잃은 후에도 법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숭실대 법학과에 진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하지만 당시엔 시각장애인에게 사법시험 응시의 길이 열려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때 겪은 좌절은 오히려 종천 씨에게 길이 됐다. 시각장애인의 복지와 인권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 그는 1979년 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를 세우고 컴퓨터 화면의 글씨를 읽어주거나 점자로 출력해주는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해 동료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이후로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와 대한안마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종천 씨는 올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경기 여주시에 시각장애인 인권증진센터인 ‘심청이네’를 설립하고, 시각장애인이 홀몸노인의 말벗이 되어주는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 시각장애인은 읽거나 돌아다니는 데엔 어려움이 있지만 말로 대화하는 것만큼은 비장애인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데서 착안했다. 올 7∼11월 시각장애인 6명을 상담사로 양성해 인근에 사는 외로운 노인 58명에게 성공적으로 상담을 진행했다. 노인들의 만족도가 100점 만점에 83점으로 높았다. 종천 씨는 “새해 목표는 말벗 상담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신양수 씨도 시각장애인 단체를 이끌며 여러 복지관에서 시행하는 교육 등 프로그램을 찾아서 동료 장애인들에게 알리는 보람으로 살고 있다. 1919년 충북 청주에서 3·1운동을 벌이려다가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 신영호 선생의 딸인 그는 “곰곰이 생각하면 내 인생엔 존경스러운 아버지뿐 아니라 다정했던 남편, 건강한 두 아들 등 ‘빽’이 참 많았다”라며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빽’이 되고 싶다”고 했다.

구술 작업부터 음성 낭독까지 도운 사람들



자서전이 나오기까지는 주인공 21명 외에도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시각장애인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글로 풀어낸 사실모 소속 구술작가들이 대표적이다. 구술작가들은 주인공이 마음을 열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남길 수 있도록 집으로 초대하거나 자기 인생 얘기를 먼저 하는 등 공을 들였다. 양수 씨는 “처음엔 긴장을 많이 했는데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구술작가가 너무 친근한 친구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번 작업은 구술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윤서희 구술작가는 “주인공이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삶을 타인에게 공개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중간에서 매개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영광스러웠다”라며 “주인공 중 한 분은 ‘상실의 아픔도 많았지만 헛된 경험이란 없다고 생각하니 내 삶도 의미 있고 아름다운 삶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말씀했는데, 이를 받아적는 나도 같은 마음이 됐다”고 했다.

책날개와 각 주인공의 사진 뒷면에는 QR코드가 실려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QR코드를 찍으면 사실모 유튜브 채널로 접속돼 367쪽 분량의 책을 모두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시각장애인에겐 음성 도서가 훨씬 친숙하기 때문에 음성 도서 제작도 병행한 것. 음성 도서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제작해 기부했다. 한승진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정보미디어팀장은 “이번 책은 동료 시각장애인에게도 의미가 있는 내용이라서 흔쾌히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표지 디자인과 교열 등 출판 작업은 사실모의 이사인 유은실 울산대 의대 명예교수가 운영하는 출판사 허원북스에서 맡았다. 유 교수는 “출판 과정에서 어르신들의 인생과 말씀을 곱씹을수록 뜻깊은 내용이라는 걸 느꼈다”고 했다. 이번 책은 23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로 선정되기도 했다.

주인공들은 인세를 모두 시각장애인 지원 단체에 기부하는 데 동의했다. 채현기 씨(79)는 “전국 맹학교에 보내달라”며 책을 60권 대량 구매하기도 했다. 구술작가로 활동하는 아내 마정임 씨를 통해 이번 책을 접했다는 그는 “주인공 모두가 큰 절망을 겪었지만 ‘해피엔딩’을 맞았다는 게 감명 깊었다”고 했다. 홍양희 사실모 공동대표는 “귀한 경험을 진솔하게 나눠준 주인공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연명의료
임종 과정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등 치료 효과 없이 생명 연장만을 위해 의학적 시술을 하는 것. 이를 원치 않는 경우 법정 서식인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나 연명의료 계획서를 통해 거부의 뜻을 기록해둘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연명의료 거부#시각장애인#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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