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파트 화재…“꽝 소리 나” “연기로 앞 안 보여”

  • 뉴시스
  • 입력 2023년 12월 25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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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새벽 도봉구 방학동 아파트서 불
아파트 연기 꽉 차 대피 못한 주민들도
"소방대원들 오기 전까지 대피 못 해"
아파트 곳곳 그을음…창문 깨져있기도
"사이렌에 잠 깨" "집안까지 연기 들어"
30대 이웃 아빠 변고에 "마음 미어져"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깼는데 화재경보기 소리가 들렸어요. 그러다 유리 깨지는 소리를 듣고 다시 일어나보니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대피하려고 했는데 연기가 너무 많고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소방대원분들이 오기 전까지는 대피하지 못했어요.”

크리스마스인 25일 새벽 서울 도봉구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주민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이 아파트 5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중학생 이모(13)군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이군은 뉴시스에 “처음엔 경보기 정도만 울렸고 잘 들리지도 않고 불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안 해 오작동인가 싶었다”며 “그런데 연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불이 다 꺼진 후에 연기가 다 나가고 나서야 대피했다”고 전했다. 연기를 들이마신 이군은 병원 치료를 받은 뒤 다행히 퇴원했다고 한다.

화재 현장인 도봉구 방학동의 아파트는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고, 베이지색 외벽은 검은 그을음이 뒤덮고 있었다. 또 곳곳엔 창문이 깨져 휑한 곳도 있어 끔찍했던 화마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파트 주변으로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어 출입이 어려웠고, 인근에 모여선 인근 주민들은 화재 현장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젓거나 한숨을 쉬기도 했다.

맞은편 동에 산다는 한 60대 여성은 “소방차 (사이렌) 소리 때문에 깨이었었다”며 “베란다 창문을 여니 여기부터 저기 끝까지 소방차와 구급차가 꽉 찼더라”고 당시 상황을 술회했다. 또다른 80대 노인도 “새벽에 ‘쾅’ 소리가 크게 나서 손자가 신고했다”고 말했다.

불이 난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윤모(58)씨는 암담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윤씨는 “어제 술도 먹고 좀 깊게 잠이 들었는데 딸이 막 깨우더라. 방송도 나오고 막 연기가 좀 찬다고 대피하라고 말이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현관에 연기가 이미 꽉 차 가지고 바로 문을 닫고 있었다”며 “그런데 연기가 다 들어와서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그래서 수건을 물에 적셔 코를 막고 있었다”고 말했다.

두 아이를 대피시키다 변을 당한 이웃의 소식에 주민들은 안타까운 심경을 숨기지 못했다. 윤씨는 “마음이 미어진다. 그 젊은 사람이, 그 새벽에 황당한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57분께 도봉구 방학동의 21층짜리 아파트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 당국은 인력 220명과 장비 57대를 투입해 오전 6시37분께 대부분의 불길을 잡았고 오전 8시40분께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이 사고로 4층에 살던 30대 남성 박모씨와 10층에 살던 30대 남성 임모씨 등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중상, 33명이 경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주민 200여명이 대피했다고 한다.

불이 난 집 바로 위층인 4층에 살던 30대 남성 박모씨는 부인과 함께 각각 0세, 2세인 자녀들을 대피시키다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과 목격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부인 A씨가 먼저 2살 아이를 재활용 포대에 던진 후 뛰어내렸고, 이어 박씨가 0살 아기를 이불로 감싸고 품에 안은 뒤 뛰어내렸다.

박씨는 이후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A씨는 어깨를 다치는 등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아이들도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고 현재 안정을 되찾았다고 한다.

화재를 최초로 신고한 것은 10층 주민 임씨로, 11층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 당국은 연기 흡입으로 인해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26일 소방 당국과 합동 현장 감식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도봉구청은 이날 현장에 통합지원본부 등을 꾸리고 담요 등 구호 물품을 제공하는 등 이재민 구호 활동에 나서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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