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딸, 딩크(DINK)… “미래의 추석, 차례는 누가 지내지?”[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9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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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2015년 추석 하늘에 뜬 ‘슈퍼 보름달’. 동아일보DB
2015년 추석 하늘에 뜬 ‘슈퍼 보름달’. 동아일보DB
장면 1. 영숙 씨는 외동딸이다. 어렸을 때는 큰아버지 댁에 가서 차례도 치르고 차례도 지냈지만, 성인이 되고 나니 딸이란 이유로 ‘차례 필참인원’에서 제외됐다. 이제 명절에 하는 일이라곤 부모님 댁에 가서 식사하고 하루 자고 오는 것뿐이다. 영숙 씨는 ‘나중에 부모님 돌아가시면 명절엔 뭘 하지? 내가 차례라도 지내야 하나?’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장면 2. 영수 씨는 추석 연휴 전 주말에 부모님을 찾아뵀다. 연휴 기간에는 아내, 자녀와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성묘는 부모님만 따로 다녀오실 예정이다. 사실 분가한 뒤로 성묘에 따라간 건 결혼 첫해가 전부다.

장면 3. 영철, 영미 씨는 결혼 10년 차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다. 명절 때마다 ‘언제 손주 안겨줄 거냐’고 물으시던 양가 부모님들도 언제부턴가 포기하신 것 같다. 올 추석에는 각자 부모님을 모시고 따로 성묘 겸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위 사례들은 최근 추석을 앞두고 기자가 주변 지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다. 이들이 영 황당하거나 신기하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요즘 주변에서 적잖이 벌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추석 명절을 앞둔 24일 광주 북구의 재래시장인 말바우시장. 장날을 맞아 차례상에 올릴 생선과 과일 한과 등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추석 명절을 앞둔 24일 광주 북구의 재래시장인 말바우시장. 장날을 맞아 차례상에 올릴 생선과 과일 한과 등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 26년 새 혼인 반 토막… 모일 사람 사라진 명절
음력 8월 15일 팔월대보름 날인 추석은 한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세시명절이다. 한가위, 가배라고도 불린다. 중국이 중추절이라는 비슷한 명절을 쇠기 때문에 중국에서 유래했을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농작물 수확을 기념한다는 공통점이 있긴 해도 추석은 엄연히 우리 고유 유래를 갖는 명절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에도 신라 제3대 왕인 유리이사금(재위 24~57년)이 ‘6부(部)를 정한 뒤 패를 갈라 길쌈 승부를 한 데서 가배가 시작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오히려 중국의 중추절이 신라의 가배에서 유래했다는 학설도 있다.

이렇듯 유서 깊은 우리 고유의 명절, 대표 명절 추석이 근래 큰 변화를 맞고 있다. 핵가족화에 이어 저출산으로 1인 가구가 급속히 늘면서 ‘가족이 모여 여러 행사를 즐기는’ 명절의 의미 자체가 퇴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올 3월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 2000건으로 1970년 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1996년만 해도 혼인 건수가 43만 5000건에 이르렀는데 채 26년 만에 56% 급감했다. 결혼을 안 하니 출생아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 출생아 수는 70만 명에서 20만 명대로 뚝 떨어졌다.


만혼, 혹은 비혼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 전체 15.5%에서 지난해 34.5%로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4인 가구의 비율은 31.1%에서 13.8%로 줄었다. 1인 가구와 4인 가구가 20여 년 새 자리를 맞바꾼 셈이다.

모여야 할 가족구성원이 줄고 가족 사이에 기쁨이자 끈이 되었던 아이들이 사라지면서 명절의 입지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위축됐다. 여기에 성차별, 뭇 어르신들의 무례한 질문 등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 세대분별적인 기존 명절 문화가 명절에 대한 거부감을 키웠다. 최근 벌어진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 감염 위험을 이유로 정부가 ‘비대면 명절’을 장려하자 안 그래도 명절 관례가 불편했던 다수 시민들이 적극 부응하며 전통 명절의 모습은 더욱 희미해졌다. 리서치 전문기업 KPRG한국정책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20대 이상 성인 1117명에게 ‘코로나19 전후 (설) 명절 맞이하는 인식과 방식의 변화’에 대해 설문했더니 79.4%가 명절에 대한 인식과 방식이 코로나19 전과 달라졌다고 답했다.

추석을 앞둔 22일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직원들이 전통 차례상과 차례 예법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뉴스1
추석을 앞둔 22일 서울 은평구 은평한옥마을 예서헌에서 직원들이 전통 차례상과 차례 예법을 시연하고 있다. 서울=뉴스1


●외동딸, 딩크… 차례상 차릴 사람 과연 있을까
이런 명절의 변화는 갈수록 가속화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수준의 합계출산율 0.84명만 유지해도 2020년 전체 인구 15.7%였던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30년 25.5%, 2050년 41.5%, 2070년 50.2%로 폭증한다. 그만큼 청·장년, 유소년 인구는 줄어든다. 과거 집안 어르신을 중심으로 가지처럼 뻗어있는 가족이 모이는 게 명절이었다면, 이제는 반대로 가지처럼 많은 어르신들 아래 모여야 할 자손은 한둘뿐인 ‘부담스러운’ 명절이 되는 셈이다.

실제 갈수록 출생아 중 첫째의 비율이 늘고 있다. 한 해 전체 출생아 중 첫째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둘째, 셋째를 낳는 집이 적어서 상대적으로 첫째가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이 첫째 비율이 62.7%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앞으로 앞서 제시한 영숙 씨 사례처럼 자녀가 외동딸뿐인 집도 늘어날 터다. 자연성비는 5:5인만큼 아이를 하나만 낳는다면 그 절반은 딸일 테니 말이다. 기존 명절 풍습에서 딸과 아들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었고 상대적으로 아들의 역할이 컸던 만큼, 영숙 씨네 같은 가족들은 각자 명절 문화를 새롭게 구축해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영숙 씨가 고민한 것처럼 차례를 딸이 지내야 할 수 있다. 차례가 아닌 새로운 추모 방식을 찾거나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영미, 영철 씨네처럼 손이 끊기는 가족도 늘어날 터다. 결혼과 출산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미혼 남성은 12.9%, 여성은 4%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사회복지연구회 설문조사, 2021). 이는 핏줄, 혈통, 조상과 같이 명절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것들을 흔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가 전과 밀과, 유병 등을 제외하고 훨씬 간소하게 만든 ‘차례상 표준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과연 다음 세대 이런 차례상이라도 차릴 집이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지금도 벌써 많은 가구가 명절 연휴 영수 씨네처럼 성묘 대신 여행을 가거나 개인 일을 본다. 올해 추석에 기자의 부모님도 친가 식구들과 모이지 않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실 예정이라고 한다. 할머니께서 병환으로 요양원에 계시고, 형제들은 각자 따로 성묘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명절 당일 모이지 않는 것은 부모님 결혼하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 한해 마무리하던 추석, 옛 의미 되살리면 돼
갈수록 옛 모습을 잃고 옛 의미마저도 잃어가는 명절이 과연 계속 명절일 수 있을까. 그나마 설날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라도 있는데, 추석은 가족 간의 만남이라는 의미는 물론 풍성한 수확을 축하한다는 의미도 진작에 퇴색된 지 오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추석 수확을 기뻐해야 할 농가인구는 지난해 기준 216만 명, 전체 인구의 5%에도 못 미친다.

추석연휴를 앞둔 27일 광주 송정역에서 한 가족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추석연휴를 앞둔 27일 광주 송정역에서 한 가족이 열차에 오르고 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다른 취재 섭외를 위해 이곳저곳 연락을 돌리다가 세시풍속에 대해 오래 연구한 한 민속학 전문가와 통화를 하게 됐다. 통화가 닿은 김에 그에게 미래에 추석이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물었다. 그는 “추석의 본뜻만 살린다면 충분히 미래에도 의미 있는 명절로서 역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농경사회에서 수확은 한 해의 마무리를 의미했다. 즉 추석도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기념일이었다”며 “현대의 추석도 가족 구성원들이 모여 한 해를 마무리하고 돌아본다는 취지를 살린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명절로 영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면 문화도 관습도 시대에 맞게 변한다. 명절도 마찬가지일 터다. 고려시대에는 지금과 같은 제사, 차례 문화가 없었고 현재의 복잡한 제사상 규칙도 오래된 것이 아니라 대체로 1969년 군사독재 시절 발표된 가정의례준칙 이후 정례화된 것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가족이 만나고, 한해를 돌아보며 서로 격려하고, 무엇이 됐든 풍성한 음식을 나눠 먹는 기본 뼈대만 변하지 않는다면 형식이나 모습이야 어떤 형태로 변한대도 괜찮지 않을까. 그것이 외동딸의 추석이 됐든, 딩크의 추석이 됐든, 가족의 ‘가을 바캉스’ 추석이 됐든 말이다. 20년, 50년 뒤 추석이 감히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본래의 긍정적인 의미만큼은 퇴색하지 않고 그대로이기를 기원해 본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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