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접속’의 그 장소 이젠 K팝 명소로[레거시 in 서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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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루의 뜨락
46년째 운영 중인 중고 음반가게
음악문화 공유하며 미래유산으로
한류 열풍에 외국인 손님도 찾아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앨범을 산 뒤 가게를 나서고 있다. 1978년 문을 연 
부루의 뜨락은 LP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으로 찾아오는 손님 10명 중 9명이 외국인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앨범을 산 뒤 가게를 나서고 있다. 1978년 문을 연 부루의 뜨락은 LP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열풍으로 찾아오는 손님 10명 중 9명이 외국인이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금은 말 그대로 ‘케이팝 전성시대’예요. 가게를 찾는 손님 10명 중 9명이 외국인입니다.”

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음반가게 ‘부루의 뜨락’에서 만난 권정숙 대표(68)는 외국인 손님이 들고 있던 앨범을 계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기자가 찾은 음반가게에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있었다. 레트로 글씨체로 적힌 파란색 간판은 그동안의 역사를 대변했지만, 가게 안에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케이팝이 귓가를 울렸다. 13평(약 43㎡) 남짓한 가게 1층에는 외국인 손님 10여 명이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 에스파 등 인기 아이돌 음반과 굿즈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 영화 ‘접속’의 그 장소

1978년 문을 연 부루의 뜨락은 46년째 운영 중인 중고 음반 가게다. 명동 신세계백화점 건너편에서 카세트와 LP를 파는 작은 가게로 시작해 1995년 현재 위치로 옮겼다.

가게 이름 부루의 뜨락은 ‘음악의 뜰’이라는 의미를 담아, 가게를 만들 당시 권 대표의 지인이 붙여준 이름이다. 권 대표는 “예전에 금난새 지휘자가 ‘부루의 밤’이라는 음악회를 열었던 걸 기억하는 지인이 추천했다. 과거 선비들이 풍류를 즐긴다는 뜻으로 ‘부루’라는 말을 쓰기도 한 걸로 안다”고 설명했다. 또 “1980년대 후반은 LP의 최전성기였다”며 “새 물건이 들어오는 날에는 가게 문을 열기 전부터 대기하는 줄이 생길 정도였다”고 말했다.

LP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던 부루의 뜨락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997년 영화 ‘접속’에 나오는 명장면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이다. 남녀 주인공이 좁은 계단에서 스치듯 지나치는 장면을 가게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촬영했다. 권 대표는 “영화가 대박이 나면서 일반 대중들도 많이 찾아왔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현재 부루의 뜨락 1층은 케이팝을 비롯한 대중음악 CD, 2층은 클래식 CD, 3층은 클래식 LP 매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좁은 계단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니 LP판이 꽂힌 수납장이 줄지어 서 있었다. 권 대표는 “3층에는 턴테이블이 마련돼 있어 누구나 LP를 직접 들어볼 수 있다”며 “턴테이블에 LP판을 올려놓고 음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금도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 한류 열풍 타며 케이팝 명소로

서울시는 2020년 부루의 뜨락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시는 ‘옛 음반을 찾아볼 수 있는 이곳은 영화 ‘접속’의 촬영 장소로 사용될 만큼 LP 애호가들이 찾는 음반가게이자,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면서 서울 시민들의 음악문화를 공유해 왔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유산’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클래식 LP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부루의 뜨락은 최근 한류 열풍을 타며 케이팝 명소로 거듭났다. 과거만큼 LP·CD 판매량이 많진 않지만 해외 케이팝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가게에서 만난 이스라엘 관광객 사라 씨(26)는 “2PM과 샤이니의 초창기 앨범을 샀는데 이건 인터넷에서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온 클라라 씨(26)도 “한국 여행 전 케이팝 앨범을 살 수 있는 곳을 구글링했더니 이 가게가 소개됐다”며 “2주 만에 두 번째로 들러 샤이니, 에픽하이, 혁오 등의 앨범을 샀다”고 말했다.

여전히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한국인 손님도 이곳을 찾는다. 이날 클래식 CD를 사러 이곳을 찾은 직장인 임병진 씨(49)는 “온라인에서도 음악을 쉽게 들을 수 있는 시대지만 CD 커버를 구경하고 손으로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는 손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는데 최근 방역규제가 완화되고 관광객이 늘면서 요즘은 매일 100명가량이 찾는다”고 했다.

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영화 접속#k팝 명소#부루의 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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