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시민 휴식처… 문화공간으로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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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거시 in 서울〈1〉 교보문고 광화문점
지난해 ‘서울미래유산’ 선정
서울 문화공간의 상징적 역할
책 직접 꺼내보는 ‘개가식 서가’

교보문고 광화문점 개점 초기인 1982년 시민들이 서가에서 책을 읽는 모습(위쪽 사진). 기존 서점들이 높은 책장에서 주인이 책을
 꺼내주는 ‘폐가식 서가’로 운영하던 당시 교보문고는 독자들이 직접 책을 보면서 고를 수 있는 ‘개가식 서가’로 운영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공용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교보문고 광화문점 개점 초기인 1982년 시민들이 서가에서 책을 읽는 모습(위쪽 사진). 기존 서점들이 높은 책장에서 주인이 책을 꺼내주는 ‘폐가식 서가’로 운영하던 당시 교보문고는 독자들이 직접 책을 보면서 고를 수 있는 ‘개가식 서가’로 운영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시민들이 공용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교보문고 제공·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600년 도읍’ 서울에는 경복궁 같은 조선시대 문화유산만 있는 게 아니다. 근현대를 거치며 시민들의 발길이 머물렀던 서점, LP 가게, 지하철역 중에도 미래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보물 같은 장소가 적지 않다. 동아일보는 서울 곳곳의 특별한 ‘서울미래유산’을 흥미로운 사연과 함께 소개하는 ‘레거시 in 서울’ 연재를 시작한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생명빌딩 지하. 은은한 클래식이 흐르는 가운데 간혹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5만 년 됐다는 뉴질랜드산 ‘카우리 나무’로 만들어진 가로 11.5m 테이블에 앉은 20여 명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었다. 소설, 경영학 서적 등 종류는 다양했지만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한국에서 가장 바쁜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멈추지 않는 광화문 한복판에 도심 속 ‘숲’처럼 자리 잡은 이곳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이다.

● 42년째 ‘문화의 곳간’ 역할

1981년 6월 1일 문을 연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지난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42년간 서울 문화공간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해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25만 종 45만 권의 책으로 가득한 서점은 평일 평균 2만 명, 주말엔 4만 명이 방문한다.

서울의 가장 노른자위 땅 ‘종로 1번지’에 서점이 들어선 건 창업주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의지 때문이라고 한다. “돈이 안 된다”며 임원들은 반대했지만 신 회장은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좌우명에 따라 서점 설립을 밀어붙였다. ‘문화의 곳간’이라는 뜻을 담아 교보문고라는 이름도 지었다.

교보문고의 특징은 ‘개가식 서가’라는 것이다. 지금은 당연해 보이지만 과거 서점은 ‘폐가식 서가’가 대부분이라 가면 주인에게 뒤편의 책을 ‘꺼내 달라’고 말해야 책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교보문고에선 독자들이 직접 책을 둘러보며 내용을 확인한 후 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개장 직후부터 성인 눈높이에 맞게 설계된 높이 162cm 책장에 기대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득 차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넓은 매장에 아이 손을 잡고 방문한 가족, 데이트를 즐기러 온 청춘남녀 등 독자 연령층도 다양해졌다.

그동안 세 번의 리뉴얼을 거친 교보문고의 서가는 더 낮아졌다. 공용 테이블을 비롯해 300여 명이 앉아서 독서할 수 있는 의자들이 20곳에 마련됐다. ‘비소설’과 ‘소설’ 등 두 가지뿐이었던 분류 표시는 26종까지 늘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2008년 자기계발, 2021년 청소년 등 보편적으로 인기를 끈다고 판단되는 책 종류를 추가하고 있다”고 했다.

●“종이책 만지면 힐링되죠”

오랫동안 서점을 지켜온 직원과 단골손님 사이에 친분이 생기기도 한다. 2004년 매장직으로 입사해 19년째 근무 중인 이의혜 대리는 “안내데스크에서 티켓 예매 업무를 할 때 늘 제가 있는 시간을 전화로 확인하고 오던 고객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손님들이 매장에 없는 책을 주문하면 다른 지점은 물론이고 경쟁 서점까지 찾아가 책을 구해다 주는 ‘센스’도 발휘한다.

이곳은 수십 년 동안 직장인의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휴식처였다. 6년 차 광화문 직장인 김모 씨(31)는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교보문고에서 종이책을 만지는 순간 ‘힐링’이 된다”며 “앞으로도 ‘교보세권’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교보문고는 최근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서점 최초로 스타벅스와 협업 매장을 만들어 책과 커피를 묶은 특별 상품 등을 판매하고, 콘텐츠 복합문화공간에선 한두 달 주기로 아티스트 작품을 디지털 미디어월에 전시한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앞으로도 광화문점을 시민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명소로 잘 가꿔 나가겠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42년 시민 휴식처#문화공간#교보문고 광화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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