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개념도 모르는 이공대 신입생… 수능 불리한 과목 외면 탓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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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때 안배웠다” 진도 못따라가
전공 수업 따라가려 과외 받기도
일부대학, 예비과정 만들어 운영
“이러다간 첨단 인재 양성 못해”

“화학 교과서 첫 장에 있는 기초 개념조차 1학년 신입생들이 모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서울의 한 사립대 화학과 A 교수는 1학기 첫 수업부터 학생들의 항의를 들었다. “고교서 안 배운 내용인데 왜 처음부터 가르쳐주지 않느냐” “잘 모르는 내용인데 설마 시험에 나오는 것이냐” 등의 원성이었다. A 교수는 “화학과에 입학한 아이들이 고교 때 화학을 공부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원자란 무엇인가’부터 하나씩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 이공계 교수들 “수업 진행 어려울 정도”
‘1학년 기초 수업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다’며 불만을 호소하는 이공계 교수들이 최근 늘어나고 있다. 일부 이공계 신입생의 화학, 물리학 등 기초과학 지식이 대학 교육을 시작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는 이공계의 근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학, 화학이 점점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서울의 다른 사립대 물리학과 교수 B 씨는 최근 수업 난이도를 두고 고민 중이다. 신입생을 받아보니 고교 때 물리Ⅰ,Ⅱ를 모두 공부하고 입학한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 수준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그는 “비유하자면 고교 1학년과 대학교 1학년 정도의 수준 차이”라며 “과학고, 영재고 출신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왜 또 배우냐’며 불만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과외를 받는 대학생도 늘고 있다. 올해 경기의 한 대학 화학과에 입학한 정모 씨(20)는 ‘일반화학’ 첫 수업을 들은 뒤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 과외 교사를 구했다. 월 4회 수업에 50만 원을 내지만 정 씨는 “아무것도 안 하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것 같다. 대학에 와서도 사교육을 찾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일부 대학은 신입생들의 부족한 지식 수준을 메우기 위해 ‘입학 전 수업’인 ‘예비대학’을 운영 중이다. 서울대는 지난해부터 ‘디딤돌 프로그램’을 신설해 3월 입학 전 신입생들에게 수학, 물리, 화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는 전체 신입생 3200여 명 중 2000여 명이 디딤돌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강원 원주 연세대 미래캠퍼스, 부산 동아대 등도 이공계열 신입생을 대상으로 기초 과학, 미적분 등을 가르치고 있다.

● 물리-화학 어렵다고 기피… 통합수능도 영향
대학생들의 기초과학 지식 수준이 자꾸 떨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현 수능 체계가 거론된다. 물리학, 화학은 이공계에서 매우 중요한 학문이지만 수능에서 ‘점수’를 따기는 어렵다. 공부량이 많고 난도는 높다 보니 대부분 학생이 기피한다. 반면 생명과학, 지구과학은 학습량도 상대적으로 적고 난도도 낮아 안정적인 득점이 가능하고, 다른 과목에 학습 시간을 더 할애할 수도 있다.

문이과 통합수능도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공계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일부 문과생들이 물리, 화학 대신 지구과학, 생명과학에 응시해 이공대에 진학하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 격차가 심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014∼2023학년도 과학탐구 전체 응시생 중 지구과학 응시자는 2014년 16.7%에서 2023학년도엔 33.7%로 늘었다. 같은 기간 화학 응시자는 29.0%에서 16.3%로 줄었다. 물리학 응시자 비율은 매년 다소 변동이 있지만 늘 가장 적었다. 심도 있는 내용을 다루는 과학탐구Ⅱ 과목들은 응시자 비율이 3%대까지 떨어졌다. 경기도의 한 대학 물리학과 교수는 “이대로 가다간 첨단 분야 인재 양성은 구호로 끝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대학생 기초과학 지식 수준#수능 체계#이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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