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세오름 주변까지는 건강한 상태
정상 부근에는 앙상한 가지만 남아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5000만원 투입
피해 실태 조사하고 정밀 모니터링
한라산 윗세오름에서 백록담 남벽으로 가는 탐방로에는 구상나무가 늘 푸름을 자랑한다(왼쪽 사진). 한라산 왕관릉에서 백록담 정상에
이르는 관음사 탐방로 구간에서는 집단으로 고사한 구상나무를 확인할 수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16일 오전 8시 반 한라산국립공원 어리목 코스 해발 1700m 윗세오름 대피소 일대. 강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한라산 특산수종인 구상나무는 꼿꼿함을 잃지 않았다. 시베리아 추위만큼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새봄을 맞이한 구상나무는 그래서 더욱 고고하게 보였다. 10여 년 전 시험적으로 식재했을 때 높이가 10∼20cm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1m 이상 훌쩍 자랐다.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백록담 남벽으로 이어지는 2km의 탐방로에서도 구상나무 숲의 위용을 느낄 수 있었다.
윗세오름 주변 구상나무와는 달리 관음사 탐방로 왕관릉에서 정상 부근인 해발 1600∼1800m 일대는 말라 죽은 구상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고사한 구상나무가 띄엄띄엄 보일 때는 경관 가치라도 있었지만 상아 색깔의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 무더기로 드러나면서 황량함이 느껴졌다.
구상나무 집단 고사 원인에 대해 그동안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지구 온난화에 초점이 맞춰졌고 단기적으로는 서식처의 기상 조건이나 수분 상황 등이 거론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태풍의 강한 바람과 기후변화에 따른 봄철 온도 상승, 구상나무의 낮은 한계수명(150년 이하) 등이 제시되기도 했지만 추정에 불과할 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구상나무의 집단 고사 원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한 가운데 연구 방향은 기후, 기상 문제에서 병해충으로 확대됐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구상나무 보전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올해 5000만 원을 들여 구상나무 병해충 연구를 시작한다고 18일 밝혔다. 서울대 식물병원 등 전문 연구기관과 함께 주요 병해충 발생과 피해 실태 및 위협 수준 분석, 정밀 모니터링 등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병해충 조사 연구에 나선다. 지난해까지 현장 조사와 연구를 통해 확인한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와 쇠퇴에 관여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병해충은 병 10종, 해충 15종 등 25종으로 파악됐다.
주요 전염성 병은 스클레로데리스 가지마름병, 넥트리아 줄기마름병 등 가지·줄기마름병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잎녹병도 발견됐다. 세계적으로 침엽수류에 피해를 주는 이들 수목병원균은 구상나무 생존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충은 솔알락명나방 등 나방 종류와 한라구상나무좀, 수염하늘소 등이다.
병해충이 열매나 잎, 목질, 뿌리에 어느 정도 해를 입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협 수준과 피해 실태 등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조사 지역의 구상나무에 고유번호를 부여해 병해충 발생 시기, 밀도, 피해율 등 변화 양상 등을 추적한다.
고영만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장은 “한라산 구상나무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에 대한 연구가 시급한 상황이다”라며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2026년에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에 활용할 종합보고서를 발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2011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위기종으로 분류한 구상나무는 신생대 3기부터 수백만 년 동안 우리나라 고지대에 적응한 특산수종이다. 지리산, 덕유산 등지에도 있지만 규모 면에서는 한라산이 세계적으로 가장 크다. 지난해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라산 해발 1400m 이상에서 자생하는 구상나무는 2017년 30만7388그루에서 2021년 29만4431그루로 4.2%(1만2957그루)가 감소했으며, 분포 면적은 2017년 638ha에서 2021년 606ha로 5.0%(32ha)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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