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국내 첫 여대 축구대회 현장 찾아가보니
금남 금녀 경계선 허무는 스포츠 동호인들
“주짓수에 남녀가 어딨어요. 빈틈을 노리다 저보다 체격이 큰 상대를 압박하는 데 성공하면 쾌감이 장난 아니에요. 최근엔 몸무게가 100kg을 넘는 남성과도 겨뤄 이겼어요.”
서울 금천구에 사는 직장인 안시은 씨(21·여)는 지난해 1월부터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했다. 안 씨는 퇴근하고 주 5회 체육관을 찾을 정도로 주짓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수업 후에도 체육관이 문 닫는 밤 12시까지 혼자 남아 동작을 연습할 정도로 ‘중독’ 상태다. 안 씨는 “스파링에 열중하다 보면 성별이 다른 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저 사력을 다하며 서로를 경기 상대로 대할 뿐”이라고 했다.
한때 특정 성별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스포츠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있다. 생활스포츠 동호인이 늘면서 고정관념을 허문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스포츠로 여겨졌던 주짓수는 최근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안 씨가 다니는 체육관은 중고교생부터 중년까지 전체 회원 중 약 40%가 여성이다.
스쾃과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등을 통해 근육을 키우는 여성도 늘고 있다. 자신을 이른바 ‘상여자’라고 부르는 이들은 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등 3가지 운동으로 바벨을 들어올린 무게를 합한 기록으로 승부를 내는 파워리프팅을 즐긴다.
무역회사 직장인 박주현 씨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체육관에서 파워리프팅 중 데드리프트 자세로 80kg짜리 바벨을 들고 있다. 박주현 씨 제공
서울 동대문구에 거주하는 무역회사 직장인 박주현 씨(22·여)는 1년 6개월째 파워리프팅을 즐기고 있다. 퇴근 후 주 4회씩 꼬박꼬박 체육관을 찾는다. 체중이 56kg인 박 씨는 이달 초 처음 파워리프팅 대회에 출전해 몸무게의 4배가 넘는 총 250kg을 들어올렸다. 박 씨는 “파워리프팅은 고중량을 이겨내는 느낌이 매력적인 스포츠”라며 “과거에는 살을 빼기 위해 유산소운동 위주로 했는데 이제야 운동다운 운동을 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박 씨가 다니는 100여 명 규모의 파워리프팅 전문 체육관에는 2021년만 해도 여성 회원이 한두 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명 중 3명이 여성이다. 박 씨가 나갔던 대회 참가자 125명 중 35명(28%)이 여성이었다.
“강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지난해 여름부터 파워리프팅을 하고 있다는 서울 성동구의 김이경 씨(24·여)는 157cm, 48kg의 몸으로 총 250kg을 든다. 이달 말 대구 대회 출전을 준비 중인 김 씨는 “중량을 칠 때(동호인 사이에서 들어올린다는 표현) 여자라서 어렵거나 불편한 건 전혀 없다. 오히려 작은 몸으로 한계를 시험하니 더 멋있는 일”이라며 “파워리프팅은 이제 내 삶 자체가 됐다”고 했다.
제약회사 연구원 한성훈 씨가 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발레 학원에서 허벅지 안쪽 근육에 힘을 주고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수스(Sous-sus)’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한성훈 씨 제공남성들이 도전을 꺼렸던 생활스포츠 종목에서도 ‘금남’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제약회사 연구원 한성훈 씨(37)는 많으면 주 3회 서울 강남구까지 찾아가 발레를 배운다. 한 씨는 “발레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처음엔 걱정도 됐다”며 “초기엔 몸에 딱 달라붙는 발레복이 민망했는데 막상 배워보니 수많은 운동 중 하나일 뿐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한 씨는 “성별보다 동작을 해내려는 집중력과 노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어느덧 ‘인생 취미’가 된 발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한 씨는 자신만의 발레 안무를 창작하겠다는 목표도 갖게 됐다.
여성 전용으로 운영됐던 폴댄스 학원도 문턱을 낮추고 있다. 성별과 무관하게 수강생을 받는 서울 마포구의 한 폴댄스 학원 원장은 “최근 남성 수강생 수요가 조금씩 늘면서 지금은 20명 중 1명꼴로 남성이 다닌다”며 “참여하는 남성 연령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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