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비 아끼려” 직장인들 대학가 유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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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캥거루족’ 사회 초년생들
“도심에 살면 월급 절반이 생활비”
고물가에 월세 저렴한 대학가로
직장인 몰려와 인근 원룸 품귀

“대학가로 돌아가는 게 저 같은 사회초년생들에겐 훨씬 이득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3년 차 직장인 이모 씨(26·여)는 지난해 9월 모교인 용산구 숙명여대 인근 원룸으로 이사했다. 보증금(1000만 원)이 기존에 살던 광화문 오피스텔의 절반 수준인 데다 월세(40만 원)도 광화문보다 20만 원이나 저렴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고물가로 식비 등의 부담이 커졌는데 대학가로 이사했더니 저렴한 학생식당도 이용할 수 있어 생활비가 월 50만 원 가까이 절감됐다”며 “당분간 모교 인근에 계속 거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 고물가에 등장한 ‘캠퍼스 캥거루족’
서울 강남·종로구, 영등포구 여의도 등 직장과 가까운 도심 지역에 거주하던 젊은 직장인들이 대학가로 돌아오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학창 시절 대학가에 살다가 취업 후 ‘직주 근접’에 매력을 느껴 도심 지역으로 이사했지만 고금리,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주거비와 생활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학가로 ‘유턴’하는 것이다. 최근 대학 졸업생 중에는 취직 직후부터 물가가 저렴하고 익숙한 대학 인근에 계속 거주하는 ‘캠퍼스 캥거루족’이 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 기숙사에 거주하던 이모 씨(24)는 지난해 12월 중구의 한 디자인회사에 취직이 결정된 후 회사 근처 원룸으로 이사하려다가 포기했다. 최소 2000만 원인 보증금이 부담이 됐기 때문이다. 이 씨는 결국 서대문구 대학가의 한 ‘셰어하우스’(보증금 60만 원, 월세 40만 원)에 입주했다. 이 씨는 “재택근무할 때는 한 끼 5000원짜리 대학 학생식당을 종종 이용한다”며 “학생식당이 아니더라도 컵밥 등을 파는 저렴한 식당이 많아 식비 부담이 적은 게 대학가의 장점”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직장 근처 원룸에 사는 박모 씨(28)도 임차 계약이 끝나면 서대문구 모교 근처에 자취방을 마련해 이사할 계획이다. 박 씨는 “월세를 포함한 생활비가 매달 월급의 절반이나 차지한다”며 “직장 근처에 계속 살다가는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없을 것 같아 이사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 직장인 때문에 집 못 구하는 대학생도
캠퍼스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것은 도심 지역의 부동산값과 임대료가 급등하면서 대학가와의 격차가 커졌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직방’을 통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과 관악구 신림동의 원룸 가운데 면적, 준공 연도, 지하철역과의 거리 등이 비슷한 2곳을 비교한 결과 서초동 원룸의 보증금은 신림동의 2배 수준이었다. 월세 역시 20만 원가량 높았다.

직장인들이 속속 대학가로 돌아오면서 대학가에는 원룸 품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용산구 숙명여대 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3월와 비교하면 최근 대학가 원룸을 찾는 직장인들이 20%가량 늘었다”며 “직장인들 때문에 오히려 대학생들이 집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갈수록 높아지는 사회초년생의 거주비 부담을 줄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신촌이나 건국대 주변 등은 주거비가 저렴하면서 교통편도 나쁘지 않아 젊은 직장인들이 몰리고 있다”며 “거주비 부담을 줄이고 자산 축적을 유도하기 위해 사회초년생 월세 대상 세액공제 확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캠퍼스 캥거루족#사회 초년생#고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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