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기준 못맞춰 수출길 막힐 수도”… 재생에너지 목표치 하향에 업체들 한숨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업 30% “글로벌 거래社에게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 받아”
발전 비중 6.3% 세계 최하위 수준
정부, 가능성 낮다며 목표 더 내려
“제도 바꿔서라도 발전량 늘려야”

한 사업장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돼 있다. 동아일보DB
한 사업장 옥상에 소규모 태양광 발전 설비가 설치돼 있다. 동아일보DB
“거래하는 해외 기업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데 국내서 쓸 수 있는 재생에너지가 없으니 해외에서 사와야 할 판입니다. 답답합니다.”

한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실질적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탄소중립’이 세계 주요 과제로 떠오르면서 우리 기업들도 탄소 배출이 적은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받고 있다. 국제적 위상이 높은 기업들은 아예 ‘100% 재생에너지 전기만 써서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는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선언 압박까지 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전체 발전량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국내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재생에너지 발전량 세계 ‘꼴찌 수준’
올해 2월 기준 미국 애플과 구글, 독일 BMW 등 주요 글로벌 기업 399개가 RE100을 선언했다. RE100이란 국제환경단체인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위원회’가 주창한 개념으로, 2050년까지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이다. 재생에너지는 태양광, 풍력, 수력, 지열·해양에너지 등 자연에 존재하는 에너지다. 발전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0에 가깝다. 현재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대부분이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발전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기업이 사용전력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함으로써 탄소중립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문제는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RE100을 실천하기 위해 거래 기업이나 협력사에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국 수출기업들도 영향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국내 300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10곳 중 3곳이 ‘글로벌 거래 기업으로부터 제품을 생산할 때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답했다.

대기업들은 직접 RE100을 선언하라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해외 기업들이 속속 RE100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E100을 선언했고, 현재까지 27개 국내 기업이 RE100 달성을 약속했다.


RE100 선언 기업은 빠르게 늘고 있는데 국내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세계 꼴찌 수준이다. 2020년 기준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6.3%다. 같은 해 브라질은 84.2%, 덴마크 78.3%, 캐나다 67.9%, 스웨덴 66.4%였다. 산유국인 미국도 20.0%,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도 각각 29.3%와 19.5%로 우리보다 높다.

2021년 국내 전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43.7TWh(테라와트시)였는데 이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제철 등 주요 대기업 5곳의 전체 전력소비량(47.7TWh)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 중 벌써 3곳이 RE100을 선언했는데, 이들의 한 해 전력소비량만 34.4TWh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오히려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서 ‘2030년까지 30.2%’로 설정했던 신재생에너지 비중 목표치를 올 초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1.6%로 크게 낮췄다. ‘기존 목표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였다.

● “소규모 발전 확대 등 대책 내놔야”
정부의 결정에 대해 재계에서는 ‘안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유럽연합(EU)은 정부 차원에서 CBAM(탄소국경조정제도·역내 생산 제품보다 탄소배출량이 많은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까지 하겠다고 나섰는데, 우리는 오히려 정부가 나서 수출길을 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해외 시장의 요구를 맞추려면 재생에너지가 많이 나는 나라로 생산라인을 옮겨야 할 것”이라며 “정부가 전력수급 결정에 앞서 이런 상황을 감안했는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을 따질 게 아니라 기준과 제도를 바꿔서라도 재생에너지 발전 목표치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환경전문가단체인 ‘기후솔루션’은 “현재의 전력계통(발전소-변전소-송전선의 연결과 부하) 수준을 핑계로 재생에너지 목표를 낮출 게 아니라 재생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혁신적이고 유연한 전력계통 운영 정책을 내놓을 때”라고 강조했다.

또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을 현재의 15.5%에서 2030년 40%까지 상향하고, 발전차액지원제도(신재생에너지 전력거래가격과 기준가격 차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제도) 지원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승완 충남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대형 발전소 건설은 지금 착수해도 최소 4∼5년이 걸리는 만큼 재생에너지 발전 시스템을 설치하는 개별 시설이나 기관에 대한 지원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re100#재생에너지#목표치 하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