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 ‘재활목적’으로 청소시킨 병원…法 “치료받을 권리 침해”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2월 27일 10시 06분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게티이미지
알코올 중독 치료를 위해 입원한 환자들에게 ‘재활 훈련’ 명목으로 청소를 시키는 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이상훈)는 A 병원 측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부당한 노동 부과행위 중단 권고 결정을 취소하라”며 제기한 소송을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알코올 의존증 치료 전문인 A 병원에 입원한 한 환자는 2020년 5월 “병원의 부당한 격리, 강제 주사투여, 청소 등으로 인권이 침해됐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당시 A 병원은 스트레스 관리와 음주 욕구 극복, 대인관계 향상, 책임감 함양 등을 목적으로 환자들에게 청소 등을 지시했다.

인권위는 같은 해 8월 부당한 격리와 강제 주사투여에 대한 진정은 기각하면서도 “병원 운영을 위한 청소, 배식, 세탁 등 노동을 환자에게 부과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인권위는 “병원의 행위는 정신건강복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입원환자에 대한 작업치료 범위와 기준을 벗어났고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A 병원은 인권위의 결정에 반발해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병원 측은 “인권위의 결정은 법적 근거가 없다”며 “청소는 노동 부과가 아니라 재활치료 목적이므로 환자들의 동의 내지 신청 하에 진행했다. 최저임금 수준의 1.7배에 해당하는 비용을 지급하고 합법적인 청소 등의 작업치료를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병원에서 청소 등을 환자에게 시킨 것은 헌법이 정한 행복추구권으로부터 도출되는 환자들의 치료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며 인권위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교적 장기 입원인 정신질환 치료는 사회로부터 격리될 우려가 높아 인권침해에 대비해야 한다”며 “관련법은 시설 편의에 따라 환자의 노동착취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치료받을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정신과 의사가 작업 방법 등에 관해 특정한 지시를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각 환자에게 작업치료를 처방한 이유, 작업치료의 프로그램 내용, 의사의 지시와 확인 여부 등도 진료기록부에 기재돼 있지 않았다”며 “치료 목적이 아닌 병원의 일방적 필요에 따라 환자들에게 일을 시킨 것”이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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