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고국에서 박해를 받다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한 말레이시아인이 출입국 당국을 상대로 낸 행정소송의 2심에서 승소했다.
성 정체성에 따른 박해도 난민 인정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 첫 법원 판결이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1-2부(부장판사 김종호)는 말레이시아인 A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에서 지난 18일 1심과 달리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무슬림으로,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10세 무렵부터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형성, 여성스러운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표현하며 생활한 것으로 조사됐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에게 적용되는 샤리아 형법으로 성소수자를 제재하고 있다. 남성 간 성행위, 공공장소에서 여성 복장을 하거나 여성 행세를 하는 것 등은 샤리아 형법의 처벌 대상이다.
A씨도 평소처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옷을 입고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여성처럼 보이게 하고 그런 옷을 입은 혐의’로 체포·기소돼 7일간의 구금형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2015년 말레이시아를 떠났고 2016년 한국에 처음 입국했다. 2017년 7월 한국에 난민인정 신청을 냈지만 출입국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아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재판부는 “원고는 10대 무렵부터 트랜스젠더의 성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말레이시아는 생물학적 성별만을 기준으로 무슬림 남성이 여성적 옷차림을 하는 것을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원고의 성 정체성이 난민법에서 규정한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고는 성 정체성을 드러냈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돼 처벌을 받았고, 이 사건 처분 당시에도 이 같은 법령이 계속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위협이 원고의 성 정체성으로 인한 부당한 사회적 제약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말레이시아로 돌아갔을 때 박해에 노출될 수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를 가졌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1심 판결을 취소하고 A씨에 대한 난민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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