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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첩첩산중은 잊어라”… ‘러스틱 라이프’ 세계로 초대합니다

입력 2022-06-25 03:00업데이트 2022-06-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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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답을 찾다-시즌3]
횡성군 체험마을 ‘고라데이 마을’… 지자체-산림청 지원 사업 선정돼
화전움막-심마니 체험 등 개발… 숙박-캠핑장 운영해 수익 창출도
도시인 年1만명 찾고 귀촌 늘어…‘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산촌’ 변신
귀촌에 관심 있는 도시민들이 지난달 경기 여주에서 산나물 재배현장을 둘러보며 현장 실습을 하고 있다. 산림청과 한국임업진흥원은 귀촌을 준비 중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전형적인 화전(火田)마을에서 연간 1만여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된 강원 횡성군 ‘고라데이 체험마을’.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산촌’으로 변신한 이곳은 귀촌이 늘면서 현재 전체 115가구 중 90가구가 외지인이다.》




“이런 첩첩산중, 오지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17일 오후 강원 횡성군 청일면 봉명리 고라데이 마을. 이 마을을 ‘체험 마을’로 운영 중인 봉명고라데이영농조합법인의 이재명 대표(65)가 주변 계곡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대표가 가리킨 계곡은 물놀이나 캠핑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발교산과 수리봉 아래 자리를 잡은 고라데이 마을은 과거 화전민 마을이었다. 횡성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다 홍천 경계에서 다시 산골짜기로 10km쯤 더 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두메산골이지만 지금은 연간 1만여 명의 도시인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 대표는 “예전엔 감자나 옥수수 농사, 임산물 채취로 생활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도시인들이 많이 찾으면서 마을이 활기를 띠고 있다”며 “청정 자연과 경관은 물론이고 도시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프로그램을 갖춘 체험마을 사업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 체험마을로 탈바꿈한 산골마을

고라데이 마을의 변신은 10년 전 화전민 마을의 특색을 앞세워 산골마을 체험사업을 벌이면서 시작됐다. 이 대표는 “산골을 테마로 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사업, 그리고 산림청의 산촌공동체 활성화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며 “이후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면서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산촌’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먼저 고라데이 마을 주민 18명은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해 체험마을 사업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마을의 특색을 살린 화전움막체험, 심마니체험, 산골운동회, 버섯체험, 밤도깨비랑 담력훈련, 명상체험 등 30여 개 프로그램을 개발해 연중 운영하기 시작했다.

봉명고라데이영농조합법인이 체험 마을에서 운영 중인 식당의 상차림. 곤드레, 버섯, 고사리, 브로콜리 등 마을 주민들이 생산한 식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제공한다. 횡성=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조합은 펜션과 민박 등의 숙박시설은 물론이고 캠핑장과 식당도 마련했다. 마을이 유명해지면서 농사가 유일한 소득이었던 과거와 달리 새로운 수익이 창출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28일에는 새로 영입한 ‘젊은 피’ 김려원 사무장(34)의 아이디어로 캠핑 축제까지 개최했다. 이날 저녁 식사도 주민들이 생산한 곤드레 등 산나물과 도토리묵, 버섯, 고사리 등 건강한 임산물로 차려 관광객들을 대접했다. 조합 관계자는 “지금 현재 마을에 살고 있는 115가구 중 90가구가 외지인일 정도로 귀촌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 트렌드의 중심에 선 산촌

고라데이 마을은 산촌으로 분류된다. 산촌이란 산림 면적이 70% 이상이고, 인구 밀도가 전국 읍·면 평균(km²당 106명) 이하인 곳(산림기본법 시행령)이면 지정된다. 현재 11개 시도 109개 시군에 466곳의 산촌이 있다. 경북 114곳, 강원 93곳, 경남 71곳 순이다.

고라데이 마을로 이주한 도시인들처럼 산촌에서 한적하고 건강한 생활을 누리려는 귀촌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귀촌 가구(34만5205가구)는 전년(31만7660가구)보다 2만7545가구(8.7%)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도 2016년 1.6%, 2018년 1.7%, 2019년 3.3% 등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임하수 산림청 산림복지국장은 “초근목피(草根木皮·풀뿌리와 나무껍질)로 허기를 채우던 과거의 산촌은 이제 옛말”이라며 “임산물의 1차 생산만 주력하던 것에서 벗어나 가공, 포장, 유통까지 맡는 한편으로 도시민들에겐 휴양과 치유 등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산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미디어도 산촌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리틀 포레스트’ ‘나는 자연인이다’ ‘슬기로운 산촌생활’ 등 산촌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TV프로그램이 잇달아 제작됐다. 이런 프로그램은 산촌에서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유튜브에서도 산촌의 여유로움을 담은 영상들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숲멍’(숲을 보며 멍 때리기), ‘풀멍’(풀을 보며 멍 때리기)이라는 용어까지 생길 정도다.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 교수팀이 매년 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 2022년판에선 올해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날것(raw)의 자연과 시골 고유의 매력을 즐기며 생활에 여유와 편안함을 지향할 수 있는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시골의 소박한 삶)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산림청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보편화된 비대면 문화, 안전한 여가활동 장소를 선호하는 움직임, 업무와 여가의 경계가 사라진 ‘워케이션(work+vacation)’ 등 새 트렌드의 중심에 산촌이 있다”고 말했다.
○ 다양한 산촌 정착 지원사업
귀촌을 준비 중인 도시민들이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서 목재로 돔하우스 만드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산촌공동체 ‘배티숲’은 ‘산에서 다시 배우는 생태자연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돔하우스 건축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촌은 목재를 비롯해 매일 식탁에서 볼 수 있는 버섯, 산나물 등 임산물을 생산하는 경제적 기능을 수행한다. 또 산림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문화, 휴양, 치유, 교육 등 ‘산림 복지’ 서비스도 제공한다.

산림청은 산촌의 이런 기능을 활성화하고, 귀촌인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산촌으로 이주했거나 이주할 계획이 있는 귀촌인에게 창업 자금이나 주택 구입자금 등 정착자금을 빌려주는 사업이 대표적이다. 귀촌을 원하는 사람에겐 정보와 교육 서비스도 제공한다. 지난해부터는 한국임업진흥원을 ‘산촌활성화지원센터’로 지정해 귀촌 지원 업무를 한곳으로 통합했다. 산림과학원도 △산림 비즈니스 모델 개발 △그루경영체(5인 이상의 지역 주민 공동체) 발굴 및 육성 등을 지원 중이다.

남성현 산림청장은 “산촌 주민의 삶의 질 향상, 소득 증대,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산촌을 새로운 삶터와 일터, 쉼터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횡성=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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