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부고가 날아왔다, 어머니 기억도 없는 나에게…[고별 1화]

히어로콘텐츠팀 입력 2021-06-15 03:00수정 2021-06-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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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별 - 1화
[아무도 울지 않은 코로나 고독사]
무연고 코로나 사망자 9명, 흔적의 퍼즐 맞추기

경기 의왕시 봉안소에 무연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망자인 김은숙(가명) 씨의 유골함이 안치돼 있다. 남편의 폭력 탓에 36년 전 집을 떠났던 고인은 자신이 낳은 삼 남매와 평생 연락이 끊긴 채 지냈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1988명.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죽음이 없다. 그중엔 홀로 떠난 이들도 있다. 무연고 코로나19 사망자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244개 광역·기초자치단체에 정보 공개를 청구해 전국에서 외로이 떠난 9명을 확인했다. 아무도 울지 않은 부고만 남긴 채 그들은 사라져갔다. 떠난 이는 말이 없다. 특히 무연고 사망자들은 흔적을 쫓기 힘들었다. 히어로콘텐츠팀은 3개월 동안 유족과 지인, 관계기관 등을 만나 기억의 파편을 재구성했다. 그 속엔 우리가 미처 보듬지 못한 삶의 심연이 담겨 있었다.》


그는 지금도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 당신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그날이.

4월 6일. 서정수(가명·40) 씨에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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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왕경찰서입니다. 어머니 김은숙(가명·67) 선생님이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정수 씨는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어머니’란 단어가 너무나 생경했다. 36년 전 집을 떠난 뒤 평생 연락 한번 나눈 적 없는 사람. 남보다도 멀었던 어머니란 호칭. 홀로 다세대주택에서 지내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돼 숨졌다는 소식에 정수 씨는 혼란스러웠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수 씨와 큰딸인 누나(45)는 결국 어머니의 시신 인계를 거절했다. 둘째 딸은 연락도 닿지 않았다. 의왕시와 보건소는 유족으로부터 ‘사체 포기 각서’를 받아 4월 7일 어머니 김 씨의 시신을 화장했다. 그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가운데.

대한민국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건 지난해 1월 20일. 이후 이 전대미문의 재난은 14일 기준 512일째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14만8273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1988명이 목숨을 잃었다.

2000명에 가까운 삶이 사라진 비극. 하지만 언젠가부터 세상은 코로나19 확진과 죽음에 조금씩 무덤덤해졌다. 어느덧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유로. 여전히 어디선가 고통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데도.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고인의 마지막 길. 유족과 지인들은 함께할 기회도 갖기 어렵다. 감염 우려로 제한된 병문안과 화장, 장례 절차. 코로나19라는 사회적 낙인에 죽음과 사연을 쉽게 알릴 수도 없다. 그 모든 인생과 사연은 그저 ‘n번째 코로나19 사망자’란 숫자로 기록된다.

김은숙 씨가 살았던 경기 의왕시 다세대주택. 김 씨는 이곳으로 이사 온 지 1년도 안 돼 홀로 방 안에서 눈을 감았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하지만 그중에도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 있다. 사망자 약 2000명 가운데 딱 9명(4월 말 기준)뿐인 이들.

‘무연고 코로나19 사망자.’

코로나19로 세상을 떠난 뒤 아무도 돌보지 않은 죽음. 사랑하는 이는커녕 누군가의 배웅도 받지 못한 고별. 오래전 헤어진 딸과 아들이 시신 인계를 거절했던 김은숙 씨는 9번째 무연고 코로나19 사망자였다. 세상에서 그렇게 지워져간 9명의 흔적을 되짚어봤다.

‘자식 버린 죄인’ 오죽 아팠을까, “돌아가신 뒤에야 진심 알았네요”
어머니의 부고가 날아왔다

“몸이 많이 아파…. 일도 못 가고 꼼짝을 못 하겠어.”

2021년 4월 3일 토요일 경기 의왕시 다세대주택 101호. 김은숙(가명·67) 씨는 옴짝달싹하기도 힘들었다. 지독한 허리 통증과 고열로 세상이 빙빙 도는 기분. 이러기를 벌써 며칠째. 홀로 사는 그를 도와줄 가족은 없었다. 하필 옆집 102호는 가족을 보러 가 집을 비웠다.

5일 월요일. 102호 아주머니와 또 다른 이웃이 김 씨를 부축해 병원에 갔다. 하지만 들어가지도 못했다. 열이 높은 김 씨에게 병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권했다. 이들은 의왕보건소로 발길을 돌렸다.

세 명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결과가 나오기 전엔 집에서 대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로 별일 없기만 기원하면서.

6일 오전 8시 50분경. 102호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선생님, 코로나19 검사 결과는 음성입니다. 그런데 확진자와 밀접 접촉이라 2주간 자가 격리하셔야 해요.”

김은숙 씨가 살던 경기 의왕시 다세대주택의 문 앞. 허리통증을 앓다가 4월 5일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김 씨는 다음날 홀로 숨진 채 방 안에서 발견됐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확진자는 김 씨였다. 아주머니는 부리나케 뛰어갔다. 문을 두드리고 불러 봐도 반응이 없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집 안 형광등만 외로이 켜져 있었다. 다급히 119에 신고했다.

“옆집 할머니가 불러도 인기척이 없어요….”

긴급 출동한 구급대가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다. 이미 김 씨는 숨을 거둔 상태였다.

오전 9시 26분. 김 씨의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인 김 씨는 부검을 할 수 없었다. 방역당국의 역학조사도 불가능했다. 정확한 사인과 사망 시간은 모두 ‘불명’으로 남았다.

1985년 어느 날. 김 씨는 야밤에 집을 나섰다.

잠들어 있는 삼 남매를 내버려둔 채. 아홉 살이던 큰딸만이 잠결에 본 뒷모습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끝까지 눈에 밟혔던 아이들. 하지만 김 씨는 더는 버틸 여력이 없었다. 술만 마시면 손찌검하는 남편. 임신 때조차 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걸핏하면 몇 푼 안 되는 생활비까지 빼앗아 갔다.

‘이대로 있다간 죽는다.’

김 씨는 살고 싶었다. 언젠가 돈을 모아 아이들과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다만 큰딸의 기억은 어머니와 달랐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엄마를 때린 것을 본 일이 없었다”고 떠올렸다.

서울로 간 김 씨는 악착같았다. 식당과 슈퍼마켓 등에서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편에 시누이인 아이들 고모가 삼 남매를 키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이들이 보고파 연락했더니 시누이는 단칼에 잘랐다.

“애들이 자기들 버린 엄마 안 만나고 싶대.”

스스로 자식 버린 죄인이라 여겼던 김 씨. 그는 코로나19로 눈을 감을 때까지 시누이의 말을 믿었다.

2002년 의왕시. 가족 떠난 지 17년 만에 김 씨는 자기 가게를 열었다. 고작 테이블 몇 개인 호프집이지만 괜스레 뿌듯했다. 매일 새벽마다 시장에서 재료를 사와 음식을 만들었다. 손맛이 좋고 정성이 깊단 소문이 나며 단골도 많아졌다.

김은숙 씨가 운영한 호프집 내부에 냉장고와 보일러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김 씨는 이곳에서 19년 가까이 호프집을 운영했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주변에서 여러 가게가 생기고 사라졌지만 김 씨는 자리를 지켰다. 동네 상인과 주민들은 그를 ‘터줏대감’이라고 불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던 터줏대감. 하지만 문득 얼굴에 깊은 그늘이 지는 순간이 있었다. 누군가 아이들에 대해 물을 때였다.

“삼 남매가 경상도에서 시누이와 살고 있어요. 돈이라도 좀 부쳐주고 싶은데, 전할 방법도 없네요.”

목 끝까지 차오르는 그리움을 억지로 삼켰다.

세월이 흘러도 가슴속 아이들은 어린아이인 채였다. 하지만 김 씨는 조금씩 늙어갔다. 2019년부터였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이 붓고 숨이 찼다. 심부전증에 고혈압. 김 씨는 매일 약을 달고 살았다.

이듬해. 예상치 못한 더 큰 난관이 닥쳤다. 코로나19. 김 씨가 평생을 바쳐 일군 가게를 몇 달 동안 열지 못했다. 월세는 쌓이고 병원비 부담도 커져갔다. 몸도 마음도 정상이 아니었다. 4월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간 김 씨. 그게 마지막 영업일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김은숙 씨가 집 앞 화단에서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키운 식물. 김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이 화단은 이웃 주민이 관리해주고 있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21년 5월 1일.

빗줄기는 바람을 타고 조금씩 굵어졌다. 차량 와이퍼도 바쁘게 돌아갔다.

서정수(가명·40) 씨와 부인은 경남 김해에서 4시간 반을 달려 의왕에 닿았다. 다세대주택 101호. 앞쪽 화단에는 비를 머금은 초록 잎사귀들이 싱그러웠다. 주민 할아버지는 “김 씨가 애지중지하며 키웠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인수를 거절했던 정수 씨. 하지만 그 뒤 매일 밤을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어머니지만 이렇게 보내도 될까.’

고민 끝에 부인과 어머니 집을 찾았다. 조용히 유품을 하나씩 정리했다. 어머니 사진도 있었다. 이제야 마주한 얼굴. 희미하게 떠오르는 옛 생각. 정수 씨는 사진을 찍어 큰누나(45)에게 보냈다.

“내 얼굴이랑 많이 닮았네….”

김 씨가 잘살 거라 믿었던 삼 남매. 실은 그들은 이미 삼 남매가 아니었다. 정수 씨 작은누나는 여섯 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도 곧 뒤를 따랐다. 알코올중독 판정을 받고 입원한 직후 숨을 거뒀다.

시누이인 고모가 한 말은 모두 거짓이었다. 큰누나와 정수 씨는 친척들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 아버지가 입원한 뒤 곧장 보육원에 남겨졌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그곳에서 있었다. 찾아온 친척은 없었다. 당연히 어머니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얘기도 듣지 못했다.

“김 씨는 둘째 딸 죽은 건 아예 몰랐어. 언제나 ‘삼 남매’가 그립다고 했지. 애들이 안 보고 싶어 해 차마 찾아갈 수 없다며. 고모랑 친척들이 잘 키워주고 있다고만 믿었지. 마지막까지 그렇게 알고 갔어.”(이웃 주민)

5월 2일. 정수 씨 부부는 어머니 호프집 정리도 끝냈다. 한참 지켜보던 맞은편 슈퍼마켓 주인이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조심스레 이런저런 사연을 물어봤다. 정수 씨는 불편하거나 피곤한 티도 내지 않았다.

서정수 씨 부부가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경기 의왕시를 찾은 5월 1일에는 비가 내리고 강한 바람도 불었다. 서 씨 부부는 다음날까지 의왕에서 머물며 어머니의 흔적을 정리하고 떠났다.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잠깐밖에 얘기를 못 했지만, 부부가 참하고 착합디다. 평생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고…. 어머니 원망하는 눈치는 아니었어요.”(슈퍼마켓 주인)

아들 정수 씨는 언론과 접촉하길 꺼렸다. 고민 끝에 부인이 대신 속내를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 받고 남편이 무척 힘들어했어요. 아무래도 다른 유족과는 다른 상황이잖아요. 여러 감정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도 어머니인데 마지막을 그리 보낸 게 마음이 편치 않죠. (유품 정리는)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거예요.”

망설이던 정수 씨의 부인은 다른 얘기도 꺼냈다.

“남편도 새로 안 사실이 있어요. 어머니도 자신들을 그리워했다는 거요. 찾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그저 떠나간 당신이 만나기 싫어할 거란 생각에…. 근데 돌아가신 뒤에야 알았네요. 실은 어머님도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찾질 못한 거였네요.”

‘무연고 코로나19 사망자’ 김은숙 씨는 눈을 감았다. 평생 소원이던 삼 남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얼마나 그리웠는지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다.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다음 날인 올 4월 6일 숨진 채로 발견된 김은숙(가명) 씨가 살았던 경기 의왕시 다세대주택 앞 골목길. 의왕=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었을까. 이젠 모두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 돼버렸다.

떠나 버린 어머니. 의왕시 봉안소에 안치된 고인은 아무런 말이 없다.

::히어로콘텐츠팀::
▽총괄 팀장 :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기사 취재:
이윤태 김윤이 이기욱 기자
▽사진 취재: 송은석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
▽프로젝트 기획: 이샘물 이지훈 기자
▽사이트 제작: 디자인 이현정, 퍼블리싱 조동진, 개발 최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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