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위 “CJ대한통운, 택배노조 교섭 응해야”… ‘원청 기업 - 하청 근로자 직접교섭’ 인정 파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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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기사들, CJ대한통운이 아닌 개별 대리점과 집배송업무 계약
산업계 “대리점 독립성 훼손”… CJ측 “대법원 판례와도 배치”
택배노조 “거부땐 형사고소 검토”… 중노위 판정 법정공방 이어질듯
하청노조 교섭요구 폭증 우려

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들이 긴급기자회견을 연 뒤 “CJ대한통운은 교섭에 나서라”고 외치고 
있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뉴스1
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들이 긴급기자회견을 연 뒤 “CJ대한통운은 교섭에 나서라”고 외치고 있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뉴스1
원청기업이 하청기업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직접 응해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판정이 나왔다. 근로자들이 계약을 맺은 기업이 아닌 원청기업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는 행정기관의 판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택배업계는 물론 다른 산업 현장에도 파장이 예상된다.

2일 중노위는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 대해 노조 측의 손을 들어줬다.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앞서 택배노조는 지난해 3월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작업환경 개선, 주5일제 및 휴가 보장 등 6개 요구안을 내걸고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그러나 CJ대한통운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이를 거부했다. 택배기사들은 CJ대한통운이 아니라 개별 대리점과 집배송업무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택배노조는 부당노동행위로 CJ대한통운을 제소했다. 1심에 해당하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11월 CJ대한통운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에 중노위는 상반된 결정을 내렸다.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노위는 “CJ대한통운이 상품 인수 및 인도 시간 단축, 작업환경 개선 등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택배기사 노조와 성실하게 교섭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노위 “CJ, 택배기사에 영향 미쳐 교섭 책임”… 택배업계 “하청 기사들 관리 권한 없는데” 반발
“CJ, 택배노조 교섭 응해야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CJ대한통운의 ‘교섭 책임’을 인정한 건 이들의 결정이 택배기사 처우 등 근로여건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택배업체가 결정하는 물품 배송비에 따라 택배기사의 월급(수수료)이 결정된다. 심야·주말 배송 방침도 택배기사들의 야근과 휴일 근무에 영향을 미친다. 중노위는 또 택배기사들이 근무하는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역시 대리점주가 아니라 원청기업인 CJ대한통운이 나서서 개선해야 할 문제로 판단했다. 서브터미널은 구 단위로 설치된 물류창고로, 90% 이상을 원청이 관리한다. 택배기사들이 당일 운송 물량을 가져가기 위해 출근하는 곳이기도 하다.

○ 중노위 결정에 택배업계 ‘비상’

중노위는 이번 결정이 모든 원청기업에 하청기업 근로자 교섭 의무를 부과하는 건 아니라고 설명했다. 중노위는 2일 보도 참고자료를 통해 “이번 판정은 CJ대한통운과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 노조의 단체교섭 관련 개별 사안을 다룬 것”이라며 “하청 노조에 대한 원청의 단체교섭 의무를 일반적으로 인정하는 취지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택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중노위 결정대로라면 택배업체가 노조의 각종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의 인사권 등 관리 권한은 없다. 특히 일부에서는 지금까지 택배회사와 대리점, 대리점과 택배기사가 맺은 계약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이번 중노위 판정은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CJ대한통운은 2일 “대법원 판례는 물론이고 기존 노동위 판정과도 배치되는 중노위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며 “중노위의 판정문을 검토한 후 법원에 판단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택배노조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처우가 사실상 ‘진짜 사장’인 원청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을 반영했다”며 “CJ대한통운의 입장과 태도를 지켜보며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형사 고소할지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법원까지 중노위와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를 부당노동행위로 판결할 경우 사업주는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이번 판정에 대해 “대리점과 택배기사 간 계약을 무력화하고 대리점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외부 인력을 활용하는 기업 경영방식을 제한해 하청업체를 위축시키고 관련 산업 생태계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 “교섭하자” 하청노조 요구 늘어날 듯

산업계는 이번 중노위 판정을 계기로 유사한 취지의 교섭 요구가 산업계 전반에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퀵서비스 기사, 보험설계사, 신용카드 모집인, 방문판매원 등 택배기사들과 유사하게 대리점에 소속된 근로자 및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들이 원청에 교섭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현장에서 원·하청 관계가 많은 자동차, 조선 등 다른 업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업계에 따르면 이미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원청업체 대상 요구는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현대차를 대상으로 지속해서 교섭을 요구하고 있다. LG 역시 최근 LG트윈타워 청소 하청업체를 변경했다가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장기 농성을 벌이면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LG그룹은 결국 이들이 LG그룹의 다른 빌딩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정년을 연장하는 등의 내용에 합의했다.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에 대한 법원과 중노위의 판단이 제각각이라 혼란이 커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번 결정은 대법원의 단체교섭 당사자로서의 사용자성 판단기준 법리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더욱이 중노위는 3년 전 동일한 취지의 사건에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결정했는데, 이번에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조가 직접 고용되지 않은 회사에도 파업을 무기로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며 “하청업체 또한 사업주로서의 역할이나 지위가 무너진 채 중간에 사람을 채용해주는 인력대행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혜미 1am@donga.com·변종국 기자
#중노위#택배업계#택배 노조#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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