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연명’ 배고파 쌀 훔친 산속 ‘움막 男’의 인생 역전

박태근 기자 입력 2021-04-22 17:07수정 2021-04-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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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움막에 거주하며 풀뿌리로 연명하던 40대 남성이 배고픔에 시달리다 쌀과 떡을 훔쳤으나 경찰 도움과 가게 주인의 선처로 새 삶을 얻게 됐다.

지난달 5일 오전 2시경 대전 서구의 한 떡집에서 쌀과 떡을 훔쳐 들고 나오는 A 씨(45)의 모습. (대전 서부경찰서 제공) ⓒ 뉴스1
지난달 5일 새벽 2시경 대전 서구의 주택가의 한 떡집에 도둑이 침입했다. 이 남성은 쌀 한 포대와 떡을 훔쳐 달아났다. 아침 일찍 가게에 나온 떡집 주인은 “가게에 둔 쌀과 떡이 사라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을 맡은 대전 서부경찰서는 방범카메라(CCTV) 영상을 확인해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의 뒤를 쫓았다. 이 남성이 시내버스를 타고 대전 서구의 한 시골 마을 종점에서 내린 것을 확인한 경찰은 해당 농가의 11가구를 조사했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용의자가 산속서 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경찰은 주변 야산을 수색, 같은달 16일 장태산 중턱에서 한평 남짓 움막에 살고 있는 A 씨(45)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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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서구 장태산 중턱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던 A 씨가 형사들에게 사연을 털어놓고 있다. (대전 서부경찰서 제공) ⓒ 뉴스1
약 1년간 산속에서 살았다는 A 씨는 상당히 야위어 있었다. 가족과는 15년 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한때 전기 관련 일을 했던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용불량자가 돼 산속으로 들어오게 됐다.

그는 이곳에서 풀뿌리를 캐 먹으며 연명하다 굶어 죽겠다는 생각에 5~6㎞ 떨어진 도심 떡집으로 내려와 쌀과 떡을 훔쳤다고 털어놨다.

경찰은 A 씨의 처분을 놓고 고심에 빠졌다. ‘야간주거침입절도죄’는 최대 징역 10년을 받을 수 있는 중한 범죄다. 최대한 선처로 벌금형이 내려진다고 해도 무일푼인 A 씨가 감당할 상황이 아니었다. 특별한 전과나 여죄는 없었다.

경찰은 수차례 검찰과 협의한 끝에 A 씨에게 사회로 복귀할 기회를 주기로 뜻을 모았다.

우선 A 씨를 설득해 피해자인 떡집 사장 B 씨(57·여)에게 용서를 구하자 했고, 그렇게 만난 B 씨는 오히려 “사정이 딱하다”며 돕겠다고 나섰다. A 씨는 B 씨에게 큰절까지 올리며 고마움을 표했다.

경찰은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기소 유예’를 결정했다. 서부서 형사들은 라면과 쌀을 사 들고 다시 A 씨의 움막을 찾아 “다시는 도둑질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A 씨는 “오래전 헤어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가족을 찾았다. A 씨는 어머니를 만나자 큰절을 올리며 용서를 구했다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A 씨의 일자리도 찾아줬다. 경찰은 예전 A 씨가 일했던 회사를 운영한 사업자를 수소문 끝에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른 회사를 차렸다는 사장은 딱한 사정을 듣고 A 씨를 기꺼이 데려가겠다고 했다. 현재 A 씨는 이 회사에서 전기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운전면허시험도 준비 중이다.

A 씨는 아직까지도 서부서 형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을 표현한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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