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키즈카페는 왜 코로나 브리핑 대란의 주인공이 됐나?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0일 12시 00분


코멘트

[코로날리지(Corona+Knowledge)] <1>

슬프게도 코로나19는 이제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습니다. 문밖을 나갈 때마다 집어 들어야 하는 마스크부터 학교, 일자리, 식당에서 밥 먹는 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 속 궁금하고 알고 싶던 코로나19 이야기를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기자들이 말랑하게 풀어 전해드립니다.
지난 26일 금요일,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 및 방역수칙 개정안을 발표했습니다. 수도권 2단계, 비수도권 1.5단계인 거리두기 단계는 그대로지만 구체적인 방역 수칙엔 다소 변화가 있었는데요. 이제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갈 때 출입명부에 ‘홍길동 외 1명’ 하는 식으로 대표자만 이름을 적어선 안 되고, 도서관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됩니다. 바뀐 방역수칙은 어제(29일)부터 적용됐죠.



● 혼돈의 금요일, ‘키즈카페 대란’ 발생


발표가 있었던 26일 오전 별안간 키즈카페 관련 뉴스가 포털 사이트를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키즈 카페에서도 취식이 금지돼 아이에게 음식을 먹일 수 없게 됐다’는 기사들이 쏟아진 건데요. 그런데 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이번엔 ‘키즈카페에선 음식 먹을 수 있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같은 정부 브리핑에 대한 기사인데, 내용은 정반대였던 겁니다.


독자 여러분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분들께서 겪으셨을 혼란이 눈에 선합니다. 이날 저녁 TV 뉴스에서까지도 어떤 채널은 “먹여도 된다”, 다른 채널은 “먹이면 안 된다” 하는 상황이 반복됐을 정도니까요. 도대체 이날, 정부 브리핑 장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기자단과 중수본의 스무고개?


혼란의 씨앗은 브리핑장에서 뿌려졌습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사회전략반장이 키즈카페에선 음식 섭취가 금지된다는 취지로 말한 건데요. 당시 발언부터 보시죠.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 뉴스1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 뉴스1


“도서관도 그렇고 키즈카페도 그렇고 식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일반 다중이용시설에 대해서는 음식물 섭취를 기본적으로 금지시킵니다.” (손영래 중수본 사회전략반장, 26일 오전 브리핑 발언)

그런데 브리핑이 끝난 뒤 점심을 먹으며 열심히 자료를 들여다보던 기자들,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을 발견합니다. 정부가 내놓은 음식섭취 금지 시설 명단 어디에도 키즈카페는 보이지 않았던 거죠.

중앙사고수습본부 3월 26일자 보도참고자료 중 일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제공
중앙사고수습본부 3월 26일자 보도참고자료 중 일부. 중앙사고수습본부 제공


기자들의 전화와 문자로 중수본 관계자들의 전화기에 불이 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이미 “키즈카페 취식 금지”라는 제목을 단 기사들이 온라인에 뜨고 있던 마당이니, 기자들 속도 타들어갔죠.

문의가 폭발하자 오후 2시 55분 중수본은 출입기자단에 문자 공지를 보냅니다. “키즈카페는 원칙적으로 음식 섭취 금지지만, 식당이나 카페 구역이 있다면 그곳에선 취식이 가능하다”는 취지였죠.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출입기자단에 2차례 보낸 정정 문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출입기자단에 2차례 보낸 정정 문자.


하지만 이 또한 보도자료 내용과는 맞지 않는 설명이었기에 기자들의 질문은 계속됐고, 중수본은 “키즈카페는 음식 섭취 금지 시설이 아니다”라는 정정 문자를 다시 한 번 보냅니다. 이번엔 보도에 혼선을 드려 죄송하다는 사과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 문자가 온 시점은 오후 8시 21분. 이미 온라인 뉴스는 물론 상당수 방송사의 저녁 뉴스까지 나간 뒤였죠. 사과는 기자들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했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결론을 말하자면 키즈카페는 음식 섭취 금지 시설이 아닙니다. 키즈카페에서 놀던 아이가 배고파하면 간단한 간식을 먹이셔도 됩니다. 키즈카페 사장님도, 아이 부모님도 처벌받지 않습니다. 물론 모두의 안전을 위해 실내 다중이용시설에서 음식을 먹거나 먹이는 일은 최소화하는 게 좋겠지만요.

● 알쏭달쏭 퍼즐 같은 방역수칙


이렇게 ‘키즈카페 대란’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파장은 사흘이 지난 시점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느 언론사는 “정부가 키즈카페 내 음식 섭취 금지를 발표했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 말을 바꾼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기사를 내기까지 했습니다.

중수본은 “여론에 따라 말바꾸기를 한 건 절대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애초부터 키즈카페는 음식 섭취 금지 대상이 아니었고, 발표 과정에서 착오가 있었을 뿐이란 겁니다. 중수본의 사정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중수본 공무원들도 사람인데 당연히 실수를 할 수 있죠. 업종별로 세세하게 구분해 놓은 현행 방역수칙이 워낙 복잡하고 방대하거든요. 참고로 이날 중수본이 발표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본 방역 수칙’은 A4용지로 109페이지에 달합니다. 사실 이쯤 되면 지금껏 큰 실수 없이 넘어간 게 용할 정도네요.

문제는 방역수칙이 100페이지가 넘는 양이라는 사실 자체입니다. 조금만 살펴볼까요. 실내체육시설 중에서도 ‘고강도 유산소 운동’ 시설과 ‘비교적 중·저강도 운동’ 시설에 적용되는 규칙이 따로 있습니다. 학원에 대한 방역수칙은 △일반 △관악기, 노래, 연기 △댄스, 무용 △기숙형 학원 등 4가지 분류로 또 나뉩니다. 너무 복잡해서 규칙을 만든 사람들조차도 헷갈리는데, 국민들에게 믿고 잘 따라달라고 말하는 건 무리한 요구 아닐까요. 방역수칙이 복잡해질수록 국민들은 지쳐갑니다.

● 울다가 뺨 맞은 자영업자들


전국의 키즈카페 사장님들은 이번 해프닝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수도권의 한 키즈카페 사장님은 기자와 통화에서 “어차피 손님이 한 명도 없는데, 음식을 먹느니 마느니 하는 게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나왔다”고 했습니다. 매출이 코로나19 이전의 10% 수준으로 줄었다면서요. 이런 사장님들에게 이번 ‘키즈카페 대란’은 그야말로 우는 아이 뺨 때리기 아니었을까요.

정부는 현행 5단계 거리두기 체계를 4단계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문제는 새 체계를 도입하기엔 방역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는 거죠. 새 거리두기 개편안은 지금 운영 중인 것보다 훨씬 강도가 약해집니다. 따라서 하루 400명씩 신규 확진자가 나오는 지금 당장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입니다.

정부는 하루 확진자가 200명대 수준을 유지해야 새 기준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새 거리두기 체계를 적용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바뀐 거리두기 체계는 지금보다는 덜 헷갈리는 것이기를 바라봅니다.

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