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라 하지 마”…30분 이어진 남편의 조롱이 부른 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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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3월 14일 07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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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20일 살인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A씨(44·여)는 항소심 선고 며칠 뒤 법원에 상소포기서를 제출했다.

재판 과정에서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과 가정폭력 등 살인의 참작 동기를 주장하면서 선처를 호소한 A씨였지만, 항소 기각 판결에 상고하지 않고 남편을 살해한 죗값을 받아들였다.

비극이 일어난 그날 밤 A씨는 술을 마시긴 했지만 자제력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을 흉기로 찌른 이유는 술이 아니라 30분이 넘도록 이어진 남편의 조롱이었다.

지난해 5월 18일 오후 8시 30분 충남 계룡시의 한 아파트에서 A씨와 남편 B씨(46)는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B씨는 이날 낮에 있었던 일로 A씨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 새벽 일을 마치고 퇴근했을 때, 이른 아침부터 엄마에게 혼나 울고 있는 딸을 보곤 마음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이 문제로 술자리에서 말다툼이 시작되자 B씨의 입에선 “계모”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A씨가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비꼬듯 놀리려는 속셈이었다.

A씨는 “계모 얘기를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만, B씨의 조롱은 그칠 줄 몰랐다. B씨는 계속해서 “계모 밑에서 자라 사랑받지 못했다”는 등 계모라는 말을 계속했다.

B씨는 “시댁에 보여주겠다”며 휴대전화로 A씨를 촬영하기도 했다. 동영상 속 A씨는 계속되는 놀림 속에서도 “너는 부모가 다 있는데 왜 그러느냐”는 등 비아냥대는 투로 대꾸만 할 뿐,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30분이 넘도록 남편의 조롱이 계속되자, A씨는 결국 화를 참지 못했다. 주방에서 흉기를 들고 B씨에게 다가가 망설임 없이 B씨를 찌른 A씨는 무릎을 꿇고 쓰러진 B씨를 흉기로 두 차례 더 찌른 뒤에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라고 소리칠 만큼 분노에 차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아들의 절규를 듣고 나서야 A씨는 “이럴 생각은 없었다”며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나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A씨는 살인이 아닌 상해를 입힐 목적으로 흉기를 휘둘렀고, 당시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기억을 잃을 정도로 만취한 탓에 남편을 흉기로 찔렀다는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1심을 맡은 대전지법 논산지원 제1형사부는 A씨가 범행 직후 출동한 경찰에게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했던 점, B씨가 촬영한 영상에서도 술에 취한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점 등을 들어 징역 10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고, 항소심에서는 평소 가정폭력에 시달리기도 했다며 살인의 참작 동기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소심을 심리한 대전고법 제1형사부는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과 같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살인에 참작할 동기가 있다고 주장하나 고려할 만한 자료가 없다”며 “흉기로 강하게 찌르고 쓰러진 피해자를 두 차례 더 찔렀다는 점 등에서 살인 고의가 입증된다는 1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어 “피해자가 A씨를 계속 조롱한 사실은 있으나, 귀책사유가 강하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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