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촌오거리 살인누명’ 피해자, 16억 배상 판결에도 웃지 못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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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월 17일 19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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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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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이나 슬픔, 이런 인간의 감정을 (누명을 쓴) 최 군이 살면서 보통 사람처럼 얼마나 표현하고 살았을까요. 표현하지 않았을 거예요. 왜냐면 15살에 교도소에 들어갔고 10년을 복역했는데, (어떻게) 이런 감정을 드러내놓고 살 수 있었겠습니까. 감추고, 때로는 누르면서 살아왔겠지요. 그러다보니까 손해배상 소송 사건의 판결 결과를 전화로 알려줬을 때, 기쁨을 드러내놓고 표현하지는 않았습니다. 목소리에서 들떠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 그 정도였습니다.”

이른바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몰려 10년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피해자 최모 씨를 변호한 박준영 변호사는 17일 채널A와 인터뷰에서 ‘국가가 피해자 최모 씨와 가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는데, 최 씨의 반응은 어땠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판사 이성호)는 13일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수감됐던 최 씨가 대한민국과 경찰 이모 씨, 검사 김모 씨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최 씨에게 16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했다.

최 씨는 15세던 2000년 8월 10일 전북 익산 약촌 오거리에서 살해된 택시기사의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을 제보했다가 범인으로 몰렸다. 이 씨 등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영장 없이 최 씨를 여관에 불법 구금해 폭행하고,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징역 10년을 선고 받은 최 씨는 2010년 만기 출소했다. 이후 2016년 11월 재심에서 허위 자백을 한 사실이 인정돼 최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진범 김모 씨는 2018년 징역 18년을 확정 받았다.

재판부는 전체 배상금 16억 원 중에서 3억 원을 사건에 관련된 경찰, 검사에게 물리기로 했다. 박 변호사는 채널A에 “수사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묻는 사례가 거의 드물었다. 검사의 직접 책임은 거의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며 “이 사건에서 경찰과 검사의 불법의 정도가 너무나 중했다고 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람들도 본인들의 책임, 잘못을 왜 모르겠느냐. 하지만 이 사회에서 그 잘못을 인정했을 때 가해지는 비난, 그리고 또 그 잘못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부담되고 두려웠을 것”이라며 “(경찰과 검사가) 1심 판결에 대해 반드시 항소할 거다. 항소하는 과정에서 진성성 있게 저희에게 다가왔으면 좋겠다.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심 재판 과정에서 경찰 두 명이 증인으로 나왔다.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증언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살했다. 자살한 경찰은 막내 경찰이었고, 그 막내 경찰이 법정에서 최 군을 여관으로 데려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며 “자살 이후에 제가 받았던 충격도 상당했다”고 말했다.

사진=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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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변호사는 최 씨를 만났을 때부터 무죄를 확신했다고 했다. 그는 “이 사건은 2003년에 진범이 잡혔을 때부터 계속 문제 제기가 되어 온 사건”이라며 “그 진범의 자백과 그 자백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최 군의 억울함을 얘기해주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의 가족은 최 씨를 돕겠다는 박 변호사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첫 만남에서 있었던 일이 자주 기억난다”며 “전주 버스 터미널 근처 다방에서 만났다. 가족들과 함께 만났다. 그때 ‘재심을 도와주겠다’, ‘이 사건은 무죄 판결이 가능한 사건이다’라고 설득을 했다. 그런데 시큰둥했다. 믿지 못하는 느낌,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 이유에 대해선 “2003년에 진범이 잡혔을 때, 정말 기대가 컸을 것 같다. 그 기대가 무너지지 않았느냐. 누구를 믿을 수 있었겠느냐”며 “도와준다고 다가오는 사람조차도 믿지 못하는, 손을 잡지 못하는, 그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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