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법 시행전 사건도 적용… 1명이 이겨도 모든 피해자 구제

허동준 기자 , 황성호 기자 , 박상준 기자 입력 2020-09-24 03:00수정 2020-09-24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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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입법예고… 재계 우려
라임-폭스바겐 피해자 소송 가능
1심 국민참여재판… 여론재판 우려
소송前 증거조사 절차도 도입

“매일같이 기업에 소장이 날아올 수도 있다. 경영이 제대로 되겠나.”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법무부가 집단소송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23일 “변호사만 바빠질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정부가 공개한 집단소송제도는 기존에는 증권 분야에만 적용되다 전 분야로 넓혔을 뿐 아니라 소송 절차는 쉽게, 구제 범위는 넓게 만들었다. 기업 관련 소송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파격적이다. 시민단체에서 요구했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제정안에 따르면 피해자가 50인 이상이면 분야에 상관없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다른 피해자의 위임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1명이라도 소송에 나서 이기면 판결 효력은 모든 피해자에게 적용된다. 미리 판결 효력을 받지 않겠다(옵트 아웃)고 신고한 사람이 아니라면 소송에 참가하지 않아도 함께 구제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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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폰, 자동차 등에 소송 몰릴 것”

집단소송제도는 국가나 개인에 대한 소송에도 적용된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학습권이 침해됐다며 대학생 3500여 명이 소속 대학과 정부를 상대로 등록금을 돌려 달라고 집단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법 시행 전에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도 소급 적용이 가능해 시행 후 다양한 집단소송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조7000억 원대 규모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라임자산운용 사건이나 옵티머스자산운용 사건,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들은 집단소송에 나설 수 있다.

이번 제정안에는 집단소송을 제기하기 전이라도 관련 증거를 조사할 수 있는 절차도 마련된다. 이때 이뤄진 증거 조사는 본안 소송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 한 변호사는 “기존에는 모든 입증 책임을 소비자가 져야 했지만 소송 제기 전 증거 조사 절차가 도입되면 이 점이 보완될 수 있어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주요 기업들은 “결국 기업이 가장 큰 타깃이 될 것”이라며 곤혹스럽다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다수의 피해를 구제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소비자의 권익만 대폭 강화했고 소송 남발로 인한 폐해에 대한 고려는 없다”며 “소송에 참여하지 않아도 일률적으로 배상을 한다는 점에서 기업은 막대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고 호소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가전제품, 자동차, 라면 등 동일한 제품을 대량으로 판매하는 기업에 대한 소송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집단소송의 성격상 거액의 소송가액을 노린 변호사들이 집단소송을 부추기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법무부는 “증권 분야의 집단소송도 2005년 이후 13건에 불과했다”며 소송 남발 가능성이 낮다고 했지만 제정안은 식품, 의약품, 자동차 등 전 분야에 적용되기 때문에 증권 분야와 단순 비교할 수 없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1심 사건에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한 것도 기업에 사실상 여론 압력을 주는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판결 결과에 관계없이 소 제기만으로 기업은 이미지와 영업 활동에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 재계 “한 사람 이겼다고 전체에 배상 안 돼”


재계는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해 최소한 견제장치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 독일, 프랑스 등에서는 신청한 피해자에게만 소송 효력이 미치는 ‘옵트 인’ 방식을 도입하고, 소송 자격을 까다롭게 따진다.

집단소송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부작용으로 인해 집단소송을 폐기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실질적인 피해 구제보다 변호사들이 가장 큰 수임료를 받을 수 있는 주 법원을 찾아다니는 이른바 ‘소송지 쇼핑’이 빈번하게 벌어졌던 게 단적인 예다. 부작용이 심각해지자 미국은 2005년 소송지 쇼핑을 제한하는 내용의 ‘집단공정소송법’을 도입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에서는 집단소송의 여파가 제조업의 엑소더스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부시 정부 때 집단소송의 공정성과 공익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법원이 집단소송을 허가해주는 식으로 요건을 엄격하게 했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히 정치권에서 “기업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하면서 ‘기습 입법’이 나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정부가 원하는 방향대로 밀어붙이겠다는 메시지처럼 보인다”며 “기존에 추진 중인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처럼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더라도 원안 그대로 입법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황성호·박상준 기자
#집단소송#피해자 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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