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 없이 해체공사… ‘안전불감’ 여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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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원동 붕괴사고 1년’ 현장 가보니
지하벽면 토양 그대로 드러나고 쇠파이프 떨어져 아이들 ‘깜짝’
지자체 감리지정제 시행됐지만 해체공사 6곳 현장엔 감리 없어

1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해체공사 현장. 현장에서 고공 작업을 하던 한 근로자가 공사에 쓰였던 쇠파이프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으로 그대로 던져서 옮기고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1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해체공사 현장. 현장에서 고공 작업을 하던 한 근로자가 공사에 쓰였던 쇠파이프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골목으로 그대로 던져서 옮기고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잠깐, 사람! 사람!”

1일 오후 서울 송파구의 한 건물 해체 공사 현장. 현장을 통제하던 직원이 위에서 쇠파이프를 아래로 떨어뜨리던 동료를 급히 멈춰 세웠다. 당시 건물 아래 골목길에선 한 초등학생이 지나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별다른 일은 없었지만, 아이의 눈빛은 연신 불안했다.

초등학생이 아니더라도 현장은 지나다니기가 께름칙했다. 현장과 길 사이에 보호 장치라곤 쇠파이프에 천을 덧댄 가림막뿐이었다. 철거 중인 건물 외벽 안쪽엔 해체한 콘크리트 잔해가, 밖에는 공사에 사용했던 쇠파이프가 그대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현장의 안전을 관리 감독해야 할 감리는 보이지 않았다. 한 공사 관계자는 “아침에 나와서 보고를 받은 뒤 바로 다른 현장으로 갔다”고 전했다.

4일이면 지난해 7월 해체 공사 중에 건물 외벽이 무너진 ‘잠원동 붕괴 사고’가 벌어진 지 1년을 맞는다. 당시 길을 가던 예비신부 이모 씨(당시 29세)가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하지만 1년 뒤 돌아본 서울 도심은 여전히 허술하고 위험한 공사장이 많았다.

잠원동 사고 당시에도 건축주는 철거업체가 추천한 지인을 감리로 고용해 논란을 키웠다. 심지어 해당 감리는 작업 현장에 친동생을 대신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이에 5월부터 ‘건축물관리법’ 개정안도 시행됐다. 일정 규모(연면적 500m² 이상, 높이 12m 이상, 지상·지하층 포함 3개 층 초과)의 해체 공사 땐 지방자치단체가 감리를 직접 지정하는 등 일정 부분 개선도 이뤄졌다.

하지만 1일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와 돌아본 서울 송파구, 서초구의 해체 공사 현장 6곳은 감리가 현장감독을 하고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한 송파구 공사 현장은 안 교수가 “잠원동 붕괴 사고의 축소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안쪽에 쌓인 잔해로 인해 외벽이 도로 쪽으로 쓰러져 인명 피해까지 났는데,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안 교수는 “통행로 쪽 외벽을 먼저 철거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건물 지하층을 철거하는 또 다른 해체 공사 현장도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감리나 현장감독자도 없이 근로자 2명이 작업했는데, 깊게 파인 지하 벽면은 주변 토양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안 교수는 “이런 경우 주변 지반이 무너져 작업자가 매몰될 수도 있다”며 “계획에 맞게 공사가 진행되는지, 안전대책이 적절한지 등을 확인해야 할 감리가 현장에 없으니 이런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현행법상 모든 철거 현장에 감리가 상주해야 하는 의무 규정은 없다. 그나마 서울시가 2017년 1월 낙원동 붕괴 사고 뒤 ‘철거 심의제’를 도입하고 가능한 한 감리가 상주하도록 방침을 정했지만 따르는 현장은 많지 않다. 여전히 감리가 운영하는 건축사무소 소속 건축사보를 현장에 대신 보낼 수 있어 ‘대리 감리’가 가능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4년제 대학에서 건축 관련 학과 전공이면 누구나 건축사보로 등록할 수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벌어진 해체 공사 현장 안전사고는 남은 잔해를 제때 처리하지 않아 무게가 가중돼 무너지거나 무리하게 설치한 중장비가 중심을 잃고 쓰러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서울시 건축사회 관계자는 “철거 현장은 대부분 공사 기간이 촉박하고 공정이 착공에 비해 훨씬 위험하다”며 “철거만이라도 감리가 상주해 안전 문제를 실시간으로 지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잠원동 붕괴사고#안전불감#감리지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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