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나타나 딸 순직급여 챙긴 母, 7000만원 토해낸다

  • 동아닷컴
  • 입력 2020년 6월 16일 14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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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던 딸이 순직하자 32년 만에 나타나 8000만원이 넘는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챙긴 생모가 양육비 7000여만 원을 토해내게 됐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주지법 남원지원 가사1단독(홍승모 판사)는 숨진 소방관의 아버지 A 씨(63)가 전 부인 B 씨(65)를 상대로 낸 양육비 청구 소송에서 “B 씨는 A 씨에게 7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32년간 연락 없다가 ‘내 딸’
지난해 1월 수도권 한 소방서에서 일하던 A 씨의 둘째 딸(당시 32세)이 숨졌다.

A 씨 딸은 구조 과정에서 얻은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우울증을 앓다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11월 공무원재해 보상심의위원회를 열고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의결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이때부터다.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 B 씨가 32년 만에 나타난 것이다.

B 씨는 본인 몫으로 나온 유족급여와 둘째 딸 퇴직금 등을 합쳐 약 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때까지 매달 91만원의 유족급여도 받게 됐다.

아버지 A 씨와 큰딸(37)은 생모가 1988년 이혼 이후 단 한 차례도 가족과 만나지 않은데다 둘째 딸의 장례식장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유족급여와 퇴직금을 나눠 받는 게 부당하다고 항의했다.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의 친오빠 구모 씨가 지난 3월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며 국회에 입법 청원을 올려 10만 명의 동의를 얻은 상황에 알려진 일이다.

‘유족급여’막을 방법 없어 ‘양육비’ 청구
하지만 A 씨와 큰딸은 현행 민법 상 친모가 유족 연금을 못 받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따라서 친모가 연금을 못 받도록 하는 대신, 과거 두 딸의 양육비 약 1억 9000만원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다.

유족들은 양육비를 받고자 한 것이 아니라 친모의 태도에 분개해 소송을 걸었다고 했다.
A 씨 부녀를 대리하는 강신무 변호사는 “현재 이를 제지할 법이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부녀가 매우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소송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양육비는 이혼 시점인 1988년 3월 이후를 기준으로 자녀 한 명당 성년이 된 해까지 매달 50만원씩 계산했다. 첫째 딸은 8600만원, 둘째 딸은 1억350만원 등 총 1억8950만원을 청구했다.

‘부모의 자녀 양육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해서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았다.

母 “남편이 딸 못 만나게 막아”
그러자 친모 B 씨는 “아이들을 방치한 사실이 없고 전 남편이 접촉을 막아 딸들과 만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딸들을 위해 수년 동안 청약통장에 매달 1만원씩 입금했다며 “두 딸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했다.

오히려 B 씨는 “아이들이 엄마를 찾을 때면 전남편이 ‘엄마를 왜 찾느냐’며 두 딸을 폭행했다”는 주장으로 역공했다. “이혼 후 친모로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보살피고 싶었지만, 내가 다가갈수록 이를 시기하는 전남편이 딸들에게 해를 가할 것을 우려해 만날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며 “(나에 대한) 큰딸의 적개심은 전남편의 험담에 의해 심어진 잘못된 인식 탓"이라고 주장했다.

현직 목사로서 그가 지역 주민을 위해 선행을 베푼다는 주변인의 탄원서도 근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딸 “엄마 말이 거짓말”
그러나 A 씨 큰딸은 법정에서 “아버지는 생모가 접근하는 것을 막지 않았으며 저와 동생은 폭행을 당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며 생모의 주장은 “거짓”이라고 진술했다.

큰딸은 “아버지는 저희를 키우면서 언성을 높이거나 손찌검을 하신 적이 없다. 제가 결혼하기 전까지 저를 ‘큰 공주’, 제 동생을 ‘작은 공주’라 부르셨던 아버지를 악마처럼 표현하는 생모가 무서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와 살고 싶다’고 한 건 본인과 동생의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생모는 동생이 떠난 이후 단 한 번도 동생이 어디에 안치돼 있는지, 왜 그러한 선택을 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부디 동생의 불쌍한 죽음으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있는 생모에게 인간으로서 도덕적 반성을 할 수 있도록 판결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재판부 “이혼 후 들어간 양육비 내라”
심리를 마친 재판부는 결국 B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청구인(A 씨)은 상대방(B 씨)과 1988년 이혼 무렵부터 자녀들이 성년에 이르기까지 단독으로 양육했고 상대방은 청구인에게 양육비를 지급한 적이 없다”며 “생모인 B 씨는 이혼할 무렵부터 딸들이 성년에 이르기 전날까지의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부모는 미성년자인 자녀를 공동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고, 그 양육에 드는 비용도 원칙적으로 나눠서 부담해야 한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A 씨 측 강신무 변호사는 “이번 법원의 결정은 이혼 시점인 1988년부터 딸이 사망한 지난해까지 30년이 넘도록 양육을 방치한 생모에게 그동안 다하지 않은 부모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취지”라며 “생모가 딸의 유족급여 등을 이미 빼돌린 사실이 확인되면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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