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열병 7개월만에 7곳으로 확산… “광역울타리 더 보강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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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돼지열병 장기戰 조짐


지난해 10월 3일 국내 야생멧돼지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지 약 7개월이 지났다. 야생멧돼지보다 앞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던 양돈농가 사육돼지(2019년 9월 16일)의 경우 지난해 10월 9일 이후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야생멧돼지 수는 5월 6일까지 604마리. 검출 지역은 지난해 3곳에서 올해 7곳으로 늘었다. 증가세가 이어지면서 야생멧돼지의 ASF 대응은 여름을 넘겨 장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ASF 바이러스 확산 방지 대응이 보다 정교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국→북한→비무장지대로 전파

일단 국내 야생멧돼지가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경로는 밝혀졌다. 환경부 소속 국립 환경과학원은 “러시아 중국에서 유행 중인 ASF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 인근 접경지역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역학조사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ASF 바이러스 감염 멧돼지들의 유전자를 분석해 보니 러시아와 중국 등에서 유행하는 것과 동일한 유전형으로 확인됐다. 북한에서도 지난해 5월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있다. 또 초기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멧돼지들은 모두 남방한계선 1km 내에서 처음 발견됐다.


북한에서 살아 있는 멧돼지가 넘어왔을 가능성은 적다. ASF는 치사율이 100%인 데다 감염되면 며칠 내 폐사하기 때문이다. ASF 바이러스는 폐사체와 혈액, 분변에서도 최대 수개월까지 생존하는 만큼 폐사체 일부가 물에 떠내려 왔거나 작은 동물들이 매개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7일 환경부가 마련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조호성 전북대 수의과대 교수는 “발생 지점들을 검토할 때 최소 3번 정도 북한에서의 유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남쪽 확산을 막는 울타리

지난 7개월간 ASF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멧돼지가 발견될 때마다 환경부가 공을 들인 건 울타리 치기였다. 멧돼지의 활동 반경이 1.3km 내외인 것을 감안해 발생 지역 인근에 1.5m 높이의 울타리를 2중으로 쳤다. 또 예방 조치로 경기 파주∼강원 고성 간 광역울타리를 설치했다.

울타리는 ASF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됐다.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멧돼지 대부분이 이 광역울타리 내에서 발견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은 “광역울타리의 차단 효과는 약 99.5%”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 울타리들을 더 보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설치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에선 일부 흔들리는 울타리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김영준 국립생태원 실장은 “ASF 바이러스는 언제든 북한에서 다시 넘어올 수 있어 울타리 유지 보수 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라며 “백신이 없는 상황에선 인내심을 갖고 버티는 것이 가장 유효한 대응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인위적 확산 막아야

ASF 바이러스가 지형이 험한 백두대간이나 사육 농가가 많은 남쪽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여름이 되면 수목이 울창해지고 다른 동물들의 활동도 활발해져 확산 방지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사람과 차량으로 인한 인위적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한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ASF 감염 폐사체 신고 포상금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산이나 들로 오간 것이 오히려 바이러스를 확산시킨 것 아닌가 싶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 전문가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선 지역사회의 협조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ASF뿐 아니라 조류인플루엔자(AI) 등 야생동물 전염병이 느는 만큼 연내 개원할 국립야생동물질병관리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후승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 박사는 “어떤 야생동물 전염병이 발생해 영향을 줄지 모르는 상황인데 이에 대한 연구나 대비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단순히 대응만 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야생동물 전염병을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단계별, 시기별로 나눠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는 현재 ASF의 발생 지역별 특징과 대응 효과들을 분석 중이다. 여기에 전문가 의견을 반영하고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국방부 등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5월 중 ASF 바이러스 대응 종합 대책을 발표할 방침이다.


:: 아프리카돼지열병(ASF) ::

돼지과에서만 발생하는 출혈성 질병. 공기 전파는 되지 않고 접촉으로 전파된다. 냉동 고기나 육포, 분변 등에서도 상당 기간 검출될 정도로 바이러스 생존력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으며 현재까지 치료제가 없다. 사람에게는 감염되지 않는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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