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서 온 교민 “2주 격리 걱정되지만 주민에 미안함 더 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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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교민 368명 탄 1차 전세기 입국

“한국행 비행기가 뜨는 순간 긴장이 탁 풀렸습니다. 악몽이 끝났구나 싶었어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서 31일 전세기로 귀국한 안모 씨(33)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씨는 이날 충남 아산의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됐다. 이곳에서 2주 동안 감염 증세를 보이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안 씨는 “우한에선 기한 없이 호텔에만 갇혀 있었다”며 “지금은 비록 격리돼 있지만 2주 후 건강하게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했다.

○ ‘안내방송’ ‘통지문’ 활용해 철저히 격리

안 씨를 포함한 한국인 368명은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발생지인 우한시와 인근 지역에서 전세기로 귀국했다. 이 가운데 18명이 발열 등 감염 의심 증상을 보여 공항에서 곧바로 병원(국립중앙의료원 14명, 중앙대병원 4명)으로 옮겨졌다. 이상 증세를 보이지 않은 350명은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나뉘어 이동했다. 아산과 진천에 각각 200명과 150명이 남겨졌다.

격리 시설에 입소한 교민들은 사실상 방 안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다. 방마다 샤워 시설을 갖춘 화장실이 딸려 있다. 방 밖으로 나서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주간 건물 밖을 나갈 수 없는 건 물론 가족과 면회도 할 수 없다.

시설에선 상주 지원단과 교민들의 접촉을 줄이기 위해 ‘안내 방송’을 주로 활용한다. 지원단은 방 앞에 도시락을 갖다 놓고 “도시락이 준비됐다”고 방송으로 안내한다. 교민들이 방문을 열고 나와 도시락을 챙겨 방 안에서 먹는다. 안 씨는 “거의 사람을 만날 일이 없다”며 “2주간 독방 생활이 걱정되지만 주민들에게 폐를 끼친 미안함이 더 크다”고 했다.


○ 착륙 후 6시간 ‘긴장’ 속에서 비상수송 작전

이날 오전 6시 5분경 우한을 출발한 전세기는 7시 58분경 김포공항 활주로에 착륙했다. 교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단체 메신저방에서 ‘고맙다’ ‘고생 많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 순간부터 김포공항에는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교민들은 이날 오전 8시 40분경 방역용 N95 마스크를 쓴 채 전세기 계단을 내려왔다. 당국은 곧장 차량으로 교민들을 김포공항 청사에서 600m 떨어진 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로 이동시켰다. 교민들은 이곳에서 입국 수속을 밟고 검역을 받았다.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공무원과 경찰관들이 교민들을 안내했다. 센터의 출입구는 봉쇄됐다. 교민들이 이용할 이동식 화장실 차량과 구급차량만 센터 안팎을 오갔다.

정부 당국의 2차례 검역 절차에서 교민 18명이 유증상자(우한 폐렴 증상과 유사한 사람)으로 분류됐다. 전세기 안에서 이뤄진 1차 검역에서 교민 12명이 검역 기준인 37.5도보다 체온이 높은 것으로 측정됐다. 간이 검역소에서 진행된 2차 검역에선 6명이 감염 의심자로 추가됐다.


○ “우한 폐렴 옮길라” 침묵의 귀국길


고국으로 돌아온 교민들은 우한 공항에서 격리시설까지 이르는 과정을 ‘침묵의 귀국길’이라고 표현했다. 전날인 30일 오후 9시 우한 공항에 모인 교민들은 공항에 대기하는 8시간 동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우한 폐렴을 옮길까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전세기 탑승 후에도 침묵은 계속됐다. 방호복을 입은 승무원들은 입국심사 서류와 생수를 미리 자리에 갖다 뒀다. 당국과 항공사는 승무원과 교민들의 대면 접촉을 줄이기 위해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았다. 교민들은 전세기에 탄 다른 교민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할 때도 말 대신 눈짓, 손짓으로 소통했다고 한다.

이날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 격리된 한 20대 남성 유학생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착륙 순간을 떠올리며 “드디어 살았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며 “감사한 마음뿐이고 내가 폐가 되지 않도록 격리 생활을 잘 마치겠다”고 했다.

고도예 yea@donga.com·이청아 기자·이소연 기자
#우한 폐렴#코로나 바이러스#확진 환자#우한 교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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