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수사·선거개입’ 의혹 촉발시킨 울산사건 재조명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20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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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 정치권과 검·경 사이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측근들이 연루된 비리의혹 수사와 검·경 갈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고래고기 환부사건 등 이른바 ‘울산사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청와대의 하명수사와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 수립과 이행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20일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국 타당성심사과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을 압수수색하고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을 울산지검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전날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을 불러 당내 경선 포기 조건으로 높은 자리 제안을 받았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 6일 송병기(57)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업무수첩 등을 토대로 청와대가 하명수사를 지시했는 지, 선거에 개입했는 지 여부 등을 전방위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은 이날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의 핵심부인 청와대가 사실상 선거를 총괄 지휘했다”며 “검찰이 압수한 송 부시장의 업무수첩에서 청와대가 송철호 시장을 도와준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검찰의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울산사건에 대한 특별검사(특검)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전현직 청와대 관계자와 송철호 울산시장 등을 고발하고, 오는 21일에는 울산에서 하명수사 의혹 등을 규탄하는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 비리수사는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과 동생, 인척 등이 각각 연루된 3가지 사건으로 나눠진다.
수사의 시작은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 A씨가 연루된 아파트 건설현장 외압사건이다.

울산지방경찰청은 2017년 12월 말 경찰청으로부터 하달받은 첩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2017년 울산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특정 레미콘업체가 선정되도록 외부 압력을 행사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았다.

A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레미콘업체 대표로부터 청탁을 받아 아파트 시공사 측에 해당업체 물량 사용을 강요했고 결국 시공사는 외압을 못 견디고 납품업체를 교체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김 전 시장이 한국당 울산시장 단독후보로 공천이 확정된 지난해 3월 16일 울산시청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A씨는 “지역업체 활성화를 지원하는 조례에 따라 지역업체의 공사 참여를 권장했을 뿐 납품을 강요하진 않았다”고 혐의를 거듭 부인했다.

경찰은 수차례에 걸친 검찰의 보안수사 지휘를 거쳐 수사를 시작한 지 1년 만인 지난해 말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올해 3월 “직권을 남용했거나 뇌물을 주고받았다고 판단할 증거가 없다“며 A씨를 불기소 처분하고 99페이지에 달하는 불기소 이유서를 통해 경찰 수사가 전체적으로 부실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사건은 김 전 시장의 동생이 연루된 30억짜리 용역계약서 사건이다.

울산지방경찰청은 건설업자 B씨의 고발로 2017년 10월부터 김 전 시장 동생인 C씨를 상대로 수사했다.

C씨는 2014년 3월 B씨와 ‘아파트 사업시행권 확보시 그 대가로 30억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용역계약서를 작성한 뒤 이후 사업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를 받았다.

경찰은 C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나 검찰은 올해 4월 ”혐의에 대한 사실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오히려 B씨와 C씨를 수사한 경찰관 D씨를 사기와 강요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해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B씨와 D씨는 예전부터 친밀한 사이로 김 전 시장 측과 지자체장 등을 협박하고 수사과정에서 1년간 530여차례 통화하면서 수사자료 등을 공유해 온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마지막 사건은 쪼개기식 정치후원금 수수사건이다.

울산경찰청은 김 전 시장 측이 국회의원 시절 편법으로 정치후원금을 받아왔다는 진정서를 접수하고 수사를 진행해 김 전 시장의 인척 E씨와 대기업 협력업체 대표 F씨를 비롯해 모두 6명을 정치자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 2012년 총선 전 1500만원에서 2000만원 가량의 후원금을 가족이나 지인 등의 명의로 수백만원씩 나눠 김 시장 측에 불법 후원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정치자금법상 개인의 경우 국회의원 1명에게 1년에 500만원까지만 후원할 수 있어 가족과 지인 등을 동원해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했다는 것이다.

E씨는 대기업의 전력 공급 관련 민원을 해결해 주는 대가로 F씨의 업체에 취업해 월급 명목으로 매달 수백만원씩 3000만원 상당을 받아챙긴 혐의(알선수재)도 받고 있다.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은 경찰이 범죄 증거물로 압수한 고래고기를 검찰이 유통업자에게 돌려주자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울산지역 검·경간 대표적인 갈등 사례다.

울산경찰청은 지난 2016년 4월 밍크고래를 불법 포획한 유통업자 6명을 검거하면서 이들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고래고기 27t(시가 40억원 상당)을 압수했다.

그런데 울산지검이 이 중 6t만 폐기 처분하고 나머지 21t을 한달 만에 유통업자들에게 돌려주자 한 해양환경보호단체가 고래고기 환부를 결정한 담당검사를 직무유기,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2017년 9월 울산경찰청에 고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검찰은 DNA 분석으로는 고래유통증명서가 발부된 합법적인 고래고기와 불법포획된 고기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고 증거가 부족해 형사소송법과 압수물 사무규칙 등에 따라 적법하게 유통업자에게 돌려줬다는 입장이었으나 경찰은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며 맞섰다.

경찰이 사건 수사과정을 수시로 언론에 브리핑하면서 관련 기사가 쏟아져 나오자 검찰은 ‘언론 플레이 중단하고 수사기관은 수사 결과로 말해야 한다’며 경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후 경찰이 사건 수사를 위해 관련자들에 대한 각종 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은 법리적 하자,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대부분 기각하면서 갈등이 계속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해 9월과 10월 고래고기 사건과 관련된 세미나를 잇따라 열어 DNA 분석을 통한 고래 불법포획 판정에는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에 경찰이 두 번째 세미나가 열리던 날 DNA 일치 판정이 난 고래고기를 유통업자에게 돌려주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자 갈등은 더욱 증폭됐다.

고래고기 환부 결정을 한 담당검사는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1년여 만인 지난해 12월 말 귀국했다.

해당 검사는 경찰에 ”원칙과 절차에 따라 고래고기를 처리한 것“이라는 원론적인 내용의 서면 답변서를 보낸 뒤 다른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경찰은 결국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담당검사와 검찰 출신으로 전관예우 의혹이 있는 유통업자 측 변호사에 대한 수사를 매듭짓지 못하고 유통업자 5명만 검찰에 송치하며 사건 수사를 사실상 종결했다.

[울산=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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