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탄압에도 인도주의 정신 지켜낸 작은 영웅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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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대한적십자 역사 재조명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대한적십자회 응급구호반. 대한적십자사 제공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대한적십자회 응급구호반. 대한적십자사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 4층 앙리뒤낭홀에서 ‘일제강점기 대한적십자회와 민족운동’이라는 주제의 학술회의가 열렸다. 대한적십자사와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주최한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1919년 8월 29일 설립된 ‘대한적십자회’가 당시 인도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벌인 독립운동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탄생 약 4개월 후 대한적십자회가 설립됐다. 당시 적십자회 차원에서 다양한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1920년 52쪽 분량의 영문 화보집인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의 발간이 대표적이다. 당시 일제의 탄압 실상과 적십자간호원 양성소 졸업사진 등이 포함됐다. 이 화보집은 국제적인 인도주의적 선전 홍보를 목적으로 제작해 배포한 최초의 영문 사진첩이었다. 대한적십자사는 해당 화보집이 중국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중국적십자사를 통해 확인 중이다.

동아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냈던 이관용 선생(1891∼1933)의 알려지지 않은 활약상도 공개됐다. 이 선생이 스위스 유학생 시절이었던 1920년 3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를 방문해 대한적십자회 가입 추진을 위해 제출한 서류가 새롭게 확인된 것이다. 이 서류에는 영문 화보집을 ICRC에 제출한 정황도 담겨 있다. 또 이 선생이 제출한 서류에는 미국적십자사가 수원 제암리 학살 현장에서 일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호활동을 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제암리 학살 현장에서 미국적십자사 차원의 구호활동 정황은 처음 공개됐다. 대한적십자사와 학회 측은 추가 조사 및 연구를 통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사실 확인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당시 ICRC는 서류를 일본적십자사에 보내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일본적십자사는 1909년 대한적십자사가 일본적십자사로 흡수됐기 때문에 서류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결국 독립을 위한 대한적십자회의 인도적 외교 활동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대한적십자회가 사용한 태극기가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대한적십자사는 “대한적십자회 이사장이었던 서병호 목사의 후손이 기증한 것”이라며 “문화재청, 서울시와 협의해 문화재 등록을 추진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대한적십자사#인도주의#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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