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한일 무역전쟁과 존 볼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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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의 ‘경제 전쟁’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를 끝으로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일본은 다음 달 1일부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 뜻을 내비쳤습니다.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약 1100개 상품 수출에 어려움이 생깁니다. 우리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탈퇴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대응하고 있습니다. 23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를 정식 의제로 논의했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일본 다국적기업 유니클로 매장이 한산하고 일본으로 가는 여행객도 크게 줄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일본의 집권 연립정부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기존 의석을 포함한 개헌 세력이 얻은 의석은 157석으로 참의원 개헌안 발의 선인 164석보다 7석이 부족합니다. 군대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의 개정을 내세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꿈은 당장 실현되지는 못하게 됐습니다.

선거 이후에도 아베 총리와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의 강경 발언 기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베 총리는 21일 수출 규제에 대해 “보복 조치가 아니라 안전과 관련한 무역 관리”라며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갖고 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와대 대변인은 22일 ‘역사 문제라고 했다가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오락가락하지 말고 최소한의 선을 지키라’는 취지로 응수했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장기전에 대비해 수입 대체 방안과 자체 기술 개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일본 정부의 보복적 수출 규제 조치 철회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국회는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의 이유로 ‘한국의 대북제재 위반’을 든 것과 관련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비난”이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같은 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소재·부품 산업의 국산화를 독력하며 극일(克日)을 강조했습니다.

한일 갈등은 미국으로서도 난감한 일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한일 두 나라가 원할 경우 갈등에 관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CS) 보좌관(사진)이 일본과 한국을 잇달아 방문했습니다. 볼턴 보좌관이 어떤 역할을 했을지 주목됩니다.

한일 사이의 무역 전쟁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물은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발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법원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정부 간 배상은 이뤄졌다고 해도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남아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배상 의무만이 아니라 민간 기업의 배상 의무까지 사라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국제분업체계의 근간을 흔들고 자유무역주의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해외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 싸게 잘 만들 수 있는 상품을 특화해 전문화하고 다른 나라와 교환하는 것이야말로 국제무역질서의 근간입니다. 볼턴 보좌관의 한일 동시 방문을 계기로 꽉 막힌 한일 관계에 숨통이 트이길 기대합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한일 무역전쟁#존 볼턴#화이트리스트#일본 수출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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